자울재에서 패한 농민군 대덕 월정에 재집결해 항전

<최혁 남도일보 주필의 남도동학유적지>

(51)농민군 최후전투인 대흥면 월정전투

자울재에서 패한 농민군 대덕 월정에 재집결해 항전

朝日연합군 장흥 대흥과 강진 대구 양쪽에서 월정리 농민군 협공

600명 이상 농민군 지제재에 진치고 일본군에 맞서 마지막 전투

관군 추격 피해 농민군 500여명 회진 포구 거쳐 德島 등으로 피신
 

남도동학 최후의 전투지 월정마을
동학농민혁명의 최후 전투가 벌어진 월정마을. 수백여명의 농민군들은 월정리에 진을 치고 있다가 일본군과 관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몇시간 되지 않아 일본군의 화력에 밀리자 살아남은 농민군들은 천관산과 덕도 등지로 숨어들어갔다.

■월정전투에 대한 위의환 선생의 주장

그 동안 학계에서는 고읍면의 옥산촌 전투를 장흥전투에서 마지막 전투라고 결론 내렸다. 때문에 <장흥군향토지>가 전하는 ‘석대와 모정의 패잔 동학군은 용산 자울재에 집결하여 군세를 정비하고 관군과 결전했으나 역시 패전하여 대덕 월정에 집결하고 다시 관군을 요격하였으나 기진역갈(氣盡力竭)하여 패도하였다고 전해온다’는 말은 무시당했다.

16일 고읍면 옥산촌 전투에서 패배한 농민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때 대흥면 농민군은 조일연합군의 5리 정도의 추격을 당하면서도 다행히 섬멸되지 않았다. 대흥면 농민군은 장흥동학농민군 중에서도 최강을 자랑하는 부대이다. 11월 25일 이인환이 대흥면에서 출정 기포하여 회령면에 당도할 때도 장흥부의 수성군과 병영군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컸다.

막강한 이인환 농민군 부대는 대흥면의 안 동네인 월정리(月亭里)에 진을 치고 마지막으로 조일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대흥면 월정리의 전투는 조일연합군의 토벌전투가 아니라 농민군이 진을 치고 있다가 당당히 조일연합군과 싸움을 벌인 성격의 전투다. 농민군은 천태산과 대흥면에서 강진군 대구면으로 넘어가는 지제재를 요새로 삼아 견고하게 진을 치고 조일연합군에 대항했다.
 

▲ 월정리 전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위의환씨장흥향토사학자 위의환씨는 남도동학전투의 종결지는 월정리라고 강조하고 있다. 480명의 일본군과 관군이 동원돼 전투를 벌일만큼 큰 전투였다고 말한다. 위의환씨가 당시 전투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인환 부대가 월정리에서 진을 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은 후비보병 19대대 2중대와 교도중대를 대흥면으로 투입했다. 일본군은 이인환 부대의 막강함을 알아서인지 월정리 전투에 삼미아일(森尾雅一)이 지휘하는 2중대의 병력과 교도중대장 이진호의 교도중대 병력에 흑석광정(黑石光正)이 지휘하는 3중대까지를 추가로 투입했다.
 

흑석광정(黑石光正)의 3중대는 12월 12일 유치면 조양촌 전투에서 농민군의 기습을 받아 명예가 실추된 부대다. 그래서인지 장흥 주둔 이후에는 중로(中路)지대라는 이름으로 장흥전투에 참여한다. 그러나 일본군이 남긴 <19대대 숙박표>에는 이 중로지대가 본래의 표시인 支3(3중대)으로 다시 등장한다. 3중대는 이때 강진군 대구면에서 지제재를 넘어 월정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2중대에는 교도중대장 이진호가 포함되어 있었다. 3중대에는 처음부터 교도중대 병력 30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월정전투에 투입된 조일연합군은 고읍면의 옥산촌 전투에 투입된 병력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계산된다. 일본군 1개 중대 병력을 150명으로 잡았을 경우 일본군은 300명이다. 교도중대장 산하 관군은 150명이다. 3중대를 수행하는 교도중대 병력 30명을 합할 경우 관군수는 180명 정도다.

그렇다면 월정전투에 투입된 조일연합군은 모두 480명 정도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장흥의 대흥면과 강진의 대구면 양쪽에서 협공을 하는 바람에 이인환의 부대도 <장흥군향토지>가 전하는 말처럼 기진역갈(氣盡力竭)하여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12월 17일 대흥면 월정리에 진을 치고 마지막 항전을 벌였던 농민군의 수는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지만 최소 500~600명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우선봉일기> 12월 24일 조의 남소사랑(南小四郞)의 지휘서신에 ‘덕도(德島)에 적도 500~600명이 달아나 들어갔다고 한다. 가서 추격하여 토벌이 가능한가?’라는 내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덕도(德島) 한 곳에만 피신해 있던 농민군이 500~600명이었으니 월정리 전투에 참여했던 농민군의 수는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흥면 월정리 전투를 마지막으로 장흥농민군의 조직적인 항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농민군은 덕도(德島)와 천관산, 천태산 등지로 피신하고 일부는 회진면의 선자도에서 배를 타고 외부로 빠져나간다. 당시의 회진의 포구는 선자도에 있었다. 회령진 만호진의 함선도 선자도에 기지를 두고 정박했다. 선자도에서 배를 타고 외부로 빠져나간 사람 중에는 전 국회의원 김옥두 할아버지 형제가 포함돼 있다.

구전에는 농민군이 16일 고읍면 옥산촌에서 패전한 후 농민군이 대흥면 월정리에 진을 칠 때 많은 물자를 주변 마을에서 강제적으로 조달했다고 전해진다. 월정리 사람들은 농민군이 진을 쳤던 곳을 지금도 진터깨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군함 아카기호
일본 소형 군함인 아카기(赤城)호. 장흥 덕도 등 남해안 일대의 섬으로 피신한 동학농민군을 섬멸하기 위해 서남해안을 지키던 일본군함의 모습도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894년 9월 18일 황해에서 중국함대를 물리치고 대동강 하구로 개선한 모습을 찍은 것이다. 아카기호는 622톤의 소형 포함이다.

■월정전투에 대한 기록

△<장흥군향토지> 패전한 동학군은 건산리 모정고지에 진을 치고 관군과 대치하던 중 부산방면에서의 관군의 증원부대의 내습으로 더 고전할 수밖에 없게 되자 석대와 모정의 패잔 동학군은 용산 자울재에 집결하여 군세를 정비하고 관군과 결전했으나 역시 패전하여 대덕 월정에 집결하고 다시 관군을 요격하였으나 기진역갈(氣盡力竭)하여 패도하였다고 전해온다.

△<대덕읍지> 529쪽: 1895년 1월. 전 해에 봉기한 동학농민혁명군이 석대혈전에서 패하자 퇴각을 해 남쪽인 용산 관산에서 소규모 접전을 하였으나 패하고 마지막으로 월정마을에 진을 쳤다. 이름하여 이곳을 진터깨라 한다.

 

덕도로 도망쳐온 동학농민군을 일본군의 감시를 피해 남해안 섬으로 피신시키고 있는 소년뱃사공 윤성도. 조연희 화백이 그린 상상도이다.

수백명 동학군 생명 구한 소년뱃사공 윤성도와 덕도 주민

덕도주민들 똘똘뭉쳐 섬으로 도망쳐온 500~600명 농민군 보호

일본군함 감시 피해 밤에 배 띄워 남해안 일대 섬으로 실어날라

옥산·월정 전투 패배 이후 수많은 농민군이 일본군과 관군의 사살·체포를 피해 덕도로 몸을 피했다. 석대들 전투 이후 천관산과 강진군 대구면·칠량면 등지로 흩어졌던 농민군들은 일본군들이 포위망을 좁혀 오자 덕도 출신의 농민군을 따라 섬으로 들어가게 됐다.

덕도에는 500~600명의 동학군이 피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군은 섬으로 피신한 동학군들을 섬멸하기 위해 군함 2척을 서남해안에 파견해둔 상태였다. 수백명의 농민군들이 덕도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군들은 관군을 앞장세워 동학군을 몰살시키려 했다.

그러나 일본군과 관군의 덕도 농민군 섬멸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관군은 1894년 음력 12월 25일 덕도에 들어갔으나 단 한명의 동학군도 잡지 못했다. 덕도 주민들이 똘똘뭉쳐 농민군들을 인근 섬으로 빼돌렸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 중의 한 명이 바로 동학농민혁명 당시 16세 소년이었던 윤성도(尹成道)다.

윤성도는 덕도주민들과 함께 농민군들을 지금의 완도 일대 각 섬으로 빼돌려 그들의 생명을 구했다. 윤성도는 장흥군 회진면 장산리에 거주하는 윤병추씨의 할아버지다. 윤씨가 할아버지 윤성도로부터 들은 내용에 따르면 윤성도는 일본군함에 들키지 않게 주로 밤을 이용해 농민군을 피신시켰다.

윤성도는 범선을 이용해 500~600명의 농민군을 금당도와 평일도, 약산, 소랑도, 충도 등 남해안 각지의 섬으로 실어 날랐다. 덕도 주민과 윤성도의 ‘농민군 피신’은 참으로 용감한 행동이었다. 불의에 맞서, 또 동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로운 일을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덕도는 민족혼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이다. /kjhyuck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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