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꽃은 핀다

필 꽃은 핀다

<나선희 나선희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꽃들이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새다. 하룻밤 자고나면 요만큼씩 피어있다. 뉘 집 담장이든 상관 않고 척척 걸쳐 핀 개나리, 그 오지랖을 부러워하며 화단의 철쭉은 부지런스레 순번 대기표를 받아 기다리고 있다. 일찌감치 핀 목련이 보란 듯 자태를 뽐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망울을 터뜨리는 벚꽃에게 바통을 넘긴다. 어쨌든, 결국, 필 꽃은 핀다.

나를 ‘맘샘’이라 부르며 따르는 청년이 있다. 내 아들과 동갑내기라 각별하게 챙기는 사이다. 경찰공무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일 년 넘게 공부 중인데 고지가 바로 목전인 지점에서 좌절을 겪고는 나를 찾기 시작했다. 한발 짝 한발 짝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맘샘! 맘샘!” 달려와 힘을 얻고 돌아가곤 하더니 오늘은 친구를 데려왔다. ‘맘샘’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친구는 진로를 놓고 고민 중이란다. 이거다 싶어 상경해 2년을 보냈는데 수확도 없이 상처만 안고 귀향했다.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대학에 복학했지만 시늉만 학생이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갈팡질팡 허송세월한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내놓을 것 없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다. 경찰이라는 확고한 꿈이 있는 친구가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조차 모르는 한심한 놈이다. 대략 내 앞에 데려온 그 친구의 하소연이다.

나는 자칭 ‘한심한 놈’의 쳐진 어깨부터 안아주었다. ‘한심한 놈’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방황한 만큼 성장한 거라고 해주었다. 세상은 자꾸만 꿈을 꾸라고 한다. 꿈과 관련한 자기 계발 서적이 날개 돋히듯 팔리고, 내로라하는 강사들은 꿈을 가지라고 열변을 토한다. 죽음을 불사하고 고난을 극복해야 꿈을 이룰 수 있는 법이라고, 꿈을 이룬 사람들은 그들만의 기발한 이력이 있다고, 위풍당당하게 도전하라고 한다. 세상에 알려진 성공 사례는 평범한 이들의 기를 제대로 죽여준다. 태생이 소심한데 어쩔 것인가? 이런 예는 동기부여를 받기도 전에 불끈 쥐었던 주먹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게 한다. 이쯤 되면 자기 계발 서적이 아니다. 리더십 강의가 아니다. 나처럼 해보라며 자랑(질)하는 거나 다름없다. 세상에는 상위 1%보다 99%의 사람들이 많다. 평범한 99%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하위 1%로 자학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상위 1%의 사람들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특별하지 않은 나지만 고개를 돌리면 꽤 괜찮은 나로 태어날 수 있다. 최근 나에게 수제자가 한 명 늘었다. 친구 아들이다. 공부 좀 하는 집안에 태어난 죄로 녀석은 기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공부만 안됐지 다른 건 다 된다. 성격도 운동도 인물도 다 통과다. 친구를 통해 아들 이야기를 들은 나는 녀석을 접수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니 득템(?)이다. 아나운서든 강사든 한 번 해보자고 했다. 녀석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중장기 대책에 돌입했다. 이후 녀석은 딴사람이 되었다. 생활 태도부터 달라졌다. 예전처럼 대충 대충 살면 안 된다며 환하게 웃는다. 담 쌓았던 공부도 하겠다고 나섰다. 태도로 보아 시간문제다. 집안의 골칫거리가 집안의 자랑거리가 될 날이 꼭 올 것이다.

아나운서 이력으로 이미 공인이 된 나다. 보통은 나에게 성공한 여성이라고들 한다.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대표주자라고 추켜세우는 이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또 다른 목표가 있기에 성공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남들이 모르는 허술한 점을 알기에 ‘헛똑똑’이라며 낙담도 한다. 회사를 더 잘 경영하고 싶은데 부족한 게 많다. 넘치는 에너지로 개척해나가는 경영가의 스토리를 접할 때면 앞의 두 청년들처럼 루저가 되는 심경이다.

다행히 나는 말랑말랑해졌다. 나이를 먹는 동안 유연해진 것이라고나 할까? 목표치에 미달이어도 그냥 뚜벅뚜벅 걷는다. 숨도 차고 다리가 풀리지만 고목에서도 꽃이 피는 법. 일년생 벚나무에서도 꽃은 피고, 화분에서도 필 꽃은 피어난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때가 되면 알아서 핀다. 그러니 각자 생긴 대로 걷는 길이 꽃길이다. 그 길에 꽃이 흐드러져 축제가 펼쳐지면 대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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