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인에게 보내는 편지

어느 기업인에게 보내는 편지

<김주완 광주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꽃은 시드는 법이 없습니다. 단지 사라질 뿐이죠. 그대가 이야기 했듯 이 세상의 모든 사라짐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그 짧은 기간에 봄바람은 꽃의 존재이유를 전파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송화(松花)가루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들은 봄철 눈요기로 백미입니다. 꽃가루를 대기 중에 퍼트리고 향내를 전파해 벌·나비를 유혹하는 활동들은 사실은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수분(受粉) 또는 가루받이라고 하죠. 생존의 조건입니다. 사람 눈으로 볼 때 이 과정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내부는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처절함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유지시킨다고 볼 수 있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수십명 직원들의 생계를 돕습니다. 그래서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그대들은 진정 애국자입니다. 간과한 것이 있다면 자연 생태계의 그 처절함을 눈치 채지 못하듯 우리들도 당신들의 숨은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판단에 그칠 뿐이죠.

지난 겨울 그대는 술자리에서 짧은 순간 외로움을 토로했습니다. 퇴근 후 편히 잠 잘 수 없다 했습니다. 경기불황 탓으로 납품수량이 줄면서 직원 급료를 걱정해야 할 정도에 이르자 불안감은 내재돼 어느덧 고통이 됐다고 했죠. 이제 그대는 스스로 바람이 되어, 수만 곳을 돌며 납품처를 찾기에 이릅니다. 새로운 기술도 발굴해야 합니다. 자기만의 브랜드로 제품을 만들고 싶어 지원처를 기웃거리기도 합니다. 미래의 전략산업에도 눈길을 주면서 사업전환도 생각합니다. 기업인들끼리 뭉쳐 광주형 제품 만들기에도 동참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잘 될 수 있을까? 이 고비를 넘겨야 할 텐데…. 수만 고민이 그대 어깨 위에 매달립니다. 물론 잘 나가는 대박 기업도 많습니다. 모든 산업계가 그렇다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그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표들은 침묵 중입니다. 입을 열어도 허공을 가로지를 뿐 반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경제는 곤두박질 중입니다.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도 미미합니다. 결국 처음 기업을 시작했듯, 변화와 혁신도 그대들 몫입니다. 방향을 고심하기 바랍니다. 신사업 발굴과 개척이 핵심입니다. ICT 분야와 자동차 부품, 애프터마켓, 에너지 저장장치 등의 기술 개발에 집중할 것을 당부합니다.

광주의 미래는 이 같은 먹거리들로 조정되고 있습니다. 조금씩 시작해도 좋습니다. 동료기업인들끼리 뭉쳐 규모화하거나 부족한 것들을 상호 보완하면서 시작하는 것도 좋겠죠. 우선 돈 들지 않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산업별 지원기관과 친해지기 바랍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일본 전자업체 샤프가 대만의 홍하이 그룹에게 팔렸습니다. 휴대폰 공룡 노키아, 필름 최강자 코닥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 일부 기업체들도 정체기나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수출이 내리막길을 걷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화무십일홍처럼 기업의 생존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미 새로운 전략산업을 선택해 추진 중입니다. 지금 잘 나가고 있는 산업은 10년 후 분명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옳은 판단입니다.

냉정히 보면 광주 광산업(光産業)도 그렇습니다. 한 때 전략 산업이었죠. 잘 선택한 산업이라 생각했습니다. 1조원 가까이 투입됐지만 제품과 가격에서 중국산에 밀리고 있습니다. 가전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값싼 임금을 찾아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 산업들이 정체되거나 쇠퇴기를 맞고 있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죠. 사라질 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분야, 신산업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변화는 아래서부터 시작될 때 동력을 갖춘다는 측면에서 그대들의 몫입니다. 머지않아 송홧가루가 산자락을 뒤덮겠죠. 변화와 혁신의 바람을 기대합니다. 산업계 저변에서부터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다시 뵈올 때 더 깊은 이야기 나누길 기대하며 강건하시길.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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