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선희 나선희스피치커뮤니케이션즈 대표>
 

“요즘 그냥 웃음이 나와. 내가 미쳤나봐. 강원도 다녀온 후로 밉기만 하던 가족들이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천주교 피정을 함께 다녀온 벗에게서 날아 온 문자다. 평소 입만 열면 불평 일색이었기에 그녀의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그녀는 가족들이 자기처럼 성실하고 치열하게 좀 살았으면 원이 없다고 해댔었다.

성에 차지 않은 가족들을 향한 불만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그녀가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느닷없이 가족들의 삶의 태도에 혁신의 바람이라도 불었을까? 변화는 그녀에게서 시작되었다. 있는 그대로 가족을 바라보게 된 거다. 내 욕심을 비우고 나니 남편이고 자식들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피정을 다녀온 후 뭔가 제대로 깨달은 모양이다.

부지런하고 정확한 그녀의 시각으로 가족을 볼 때, 심야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느라 늦잠자면 질서가 없는 사람, 잘 씻지 않으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 대외활동보다 혼자 꼼지락거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식의 예단이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가족입장은 다를 수 있다. 밤이라야 일이 손에 잡히는 형이니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이고, 씻는 것에 매달려 외면에 신경 쓰는 것보다 내면의 양식을 쌓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며, 혼자 있는 시간이 좋지만 인간관계에도 손색없는 무난한 성격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들도 대충 사는 게 아니다. 나름의 기준으로 잘 살고 있는 거다. 그런데 내 눈에 못마땅한 그들 때문에 나는 괴롭다. 누가 문제인가? 세상의 문제는 거의 밖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다.

속내를 털어놓다보면 결혼 후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들은 대등한 거래(give-and-take)의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을 이루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결혼 후 다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던 여자들이다. 하지만 남편들의 속마음은 다르다. 결혼했으니 안심인거다.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집중하지 못했던 사회생활, 가장이 되었으니 제대로 해보겠다며 밖으로 나돈다. 여자는 결혼 전과 백팔십도 돌변해 버린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남자는 그게 아니다. 결혼 후 돌변한 것이 아니라 연애 전 상태, 그러니까 원래대로 돌아갔을 뿐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팔년이라는 긴 연애 기간의 맘고생을 보상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남편을 원망하는 동안 많이 외로웠다. 당연히 행복하지 못했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남편의 배은망덕이 아니라 내 문제였다. 결혼 생활에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였을 남편이야 어쨌든, 내가 사랑한 것으로 충분했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 대각견성하고나니 자연스럽게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을 통해 얻은 성숙은 다른 관계에도 적용되었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라고 곧장 대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족의 삶의 태도가 양에 차지 않은 그녀, 남편에게 왕비대접 받지 못한 게 억울한 아내, 모두 행복하다고 대답 못할 사람들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대가를 바라는 습성이 있다. 내가 사랑한 만큼 꼭 되돌려 받아야 한다. 노력한 만큼 기필코 성공해야 하며, 투자한 만큼 벌어야 옳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처럼 아귀가 딱딱 들어맞아 주질 않는다. 대가를 받아야하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다. 그 때부터 내 안의 불만이 요동친다. 그래서 가족을 미워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사랑하되 굳이 받으려 말고, 노력하되 결과를 수용하며, 이왕 투자했으니 자신을 믿어 준다면 삶이 여유롭다.

행복하려면 주체가 “나”여야 한다. “너”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다. 혹여 그렇다면 과감히 “너”에게서 탈출하면 된다. 탈출 못하는 건 “나”의 문제다. 이를 해결하고 나면 행복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내 곁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게 아니다. 내가 사랑하지 못하니 외로운 법이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표정에 행복이 넘쳐 난다. 사랑하는 것이 일상인 그들에게 답이 있다. 행복하려면 사랑하는 사람을 두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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