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형 선고한 판사가 소년범에 책 선물

“선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고뇌의 흔적

범행 정도가 무거워 보호 처분 대신 실형

재판 담당 판사가 판결을 내린 직후 교도소로 이송되는 수감자에게 책을 선물해 눈길을 끌었다. 판사의 이례적인 행동에 자연스럽게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지난 26일 광주지방법원 301호 법정에서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 3부(부장판사 김영식)는 특수절도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18)군에 대한 항소를 기각하고 장기 2년, 단기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는 박군의 옆을 지키고 있던 교도관에게 책을 건네며 전달해달라고 당부했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따뜻한 위로의 말과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혜민 스님의 인생 잠언이 담겨 있어 지난 10년간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김 부장판사는 책에 “소년범으로 보호처분을 고려했지만 불가피하게 징역형을 선고합니다. 잘 선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선물합니다.”라고 적었다.

김 부장판사가 소년범인 박군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얼마나 고뇌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박군이 만 19세 미만의 소년으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형사처벌보다는 환경조정과 품행교정을 위한 소년법상 보호처분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년범으로 보호처분하기에는 박군의 범행 정도가 중했기 때문이다. 박군이 기소된 죄목만 특수절도, 사기,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 상해, 절도, 장물취득 등 6건에 이른다.

이들 범죄는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에 저질렀고, 자수하려는 공범에게 상해를 가한 점, 보호처분 5회, 소년원 퇴원 뒤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고려할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광주지법 관계자는 28일 “소년범이지만 보호처분할지 실형을 선고할지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며 “불우한 집안 환경에서 똑똑한 소년이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게 안타까운 마음에 책을 추천했는데 아무쪼록 죄를 뉘우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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