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군 유골, 진도로 봉환해 역사의미 살려야

<62회, 진도동학농민혁명의 재발견(다)>

동학농민군 유골, 진도로 봉환해 역사의미 살려야

전주시· (사)동학기념사업회 유골 화장 후 완산전적지 안장계획

진도군 강력반발…유골 봉환 받은 후 공원조성등 사업 추진 방침

문체부 화장보류 지시…문화재청 문화재등록 가능여부 검토 중
 

1910년대 진도읍성 모습
1910년대 진도읍성 전경. 진도농민군과 다른 지역 농민군들은 진도읍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힘을 모았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박주언씨 제공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발족

전북 전주시 소재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지난 2015년 2월 16일 일본에서 돌아온 동학농민군지도자 유골을 화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진도학회의 나경수 회장과 박주언 부회장, 조성문 총무, 진도군 이석찬 문화재계장, 군의회 김상헌 의원 일행은 전주동학기념사업회 문병학 사무처장을 면담하고 유골화장에 대한 정황을 파악했다.

2015년 3월12일 문화체육관광부 인문정신문화과는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안장 관련 회의’를 갖고 전주동학기념사업회가 동학지도자유골을 4월16일 전주에 안장(매장)할 계획임을 확인했다. 이날 회의를 주관한 문화체육관광부는 12개 기관단체가 모인 회의를 공정히 진행했어야 함에도 전주시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체부는 이에 앞서 12개 기관단체 회의에 관한 공문을 발송하면서 ‘-향후추진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아래와 같이 관계자 회의를 개최하오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명시했으나 전주시와 전주동학기념사업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등의 주장을 지지하며 회의를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이에 따라 진도 측이 강력히 반발, 회의는 결국 무산됐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 대부분은 동학농민군 유골 화장에 반대했다. 그러나 안장지를 놓고 진도와 전주 간의 의견대립이 너무 커 결정을 보지 못한 채 해산했다. 사실 이날 회의에 진도 측은 추진계획 청취자 입장으로 참석한 상태였다. 진도 측의 의사결정권이 철저히 무시된 회의였다.
 

1910년대 진도 철마광장 모습
1894년 진도에서는 수많은 동학농민군이 각종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대들 전투 이후 농민군의 세가 꺾인 뒤 진도의 동학농민군과 진도로 숨어들어온 농민군 수백 명이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에 진도 측 참석자들은 유골의 진도봉환투쟁을 위한 조직적인 기구가 필요함을 절감해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2015년 3월 18일 결성했다. 진도기념사업회는 문체부의 불공정한 처사와 전주동학기념사업회의 부당한 주장 및 전주시의 편협한 역사의식을 진도군민들에게 호소하면서 범 진도군 차원에서 동학농민군유골반환을 추진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이후 같은 해 4월20일 진도학회와 진도군, 진도군의회,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청와대를 비롯해 감사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전북도, 전주시, (사)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전주기념사업회 등에 동학농민군유골 화장방침 철회를 탄원했다.
 

진도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1996년 일본 홋카이도대가 한국에 반환한 동학군 지도자 유골. 이 유골은 1906년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가 전남 진도에서 반출해 간 것이다. 유골에는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현재 전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연합뉴스

◆진도와 전주동학기념사업회의 관계

진도군은 지난 2005년 9월 (사)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 용역을 주어 전주기념사업회는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유골봉환을 위한 학술연구 및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 조성계획’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주기념사업회는 보고서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1995년 7월에 일본에서 발견되고 1996년 5월에 국내로 봉환되어 전북 정읍시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임시 안치되어 있는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유골은 조사 결과 진도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러므로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임시 안치되어 있는 유골은 마땅히 고향인 진도로 봉환하여 안치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에 와서 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전주시와 함께 유골의 처분권을 주장하고 있다. 전주시는 2015년 4월6일 작성 공문(진도측 탄원서-동학지도자 유골 진도 봉환 안치를 바람-에 대한 회신)에서 ‘우리 시에서는 하루 빨리 동학농민군 지도자가 영면할 수 있도록 법적연고권자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함께 차질 없이 안장을 추진할 계획으로, 더 이상 지역 간 이견으로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많은 협조를 당부드립니다’고 말하고 있다.

◆진도동학지도자 해골에 대한 진도의 주장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진도군, 진도군민과 더불어 유골의 주인공이 안식할 수 있도록 기념공원조성과 함께 효과적인 기념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선 1억원의 예산을 마련해 놓고 있는 상태다.

진도기념사업회 측은 전주동학기념사업회가 2005년 진도군에 제출한 용역보고서에서 주장했던 ‘마땅히 고향인 진도로 봉환하여 안치해야 한다’ 내용대로 유골을 진도로 보내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주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전주동학기념사업회는 전주안장계획을 철회하고, 진도에서 채집된 유골을 진도에 영구 안치해 동학농민혁명정신 계승사업의 전국화에 협조해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진도기념사업회 측은 이외에도 문체부와 문화재청이 40여만 동학희생자 중 유일한 물적 증거인 유골의 희소성과 역사성을 높이 평가해 유골을 문화재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동학농민군 유골은 자주정신계승 차원에서도 매우 의미가 깊은 것이다.

진도기념사업회 측은 전주시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화장 후 안치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농민군 유골을 별로 가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에 크게 분개하고 있다. 유골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은데도 전주시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전주시공원조성의 치장물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학 농민군 지도자 유골 보존방안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전주시는 2015년 2월16일 진도출신 동학지도자 유골을 화장 해 완산전적지에 안장하고 묘역 일대를 ‘동학농민혁명 역사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 이는 유골의 진도반환 요구가 공론화되면서 전주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유골보존이 ‘법적으로는 불법’이라는 감사원의 통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유골의 보관·전시는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다. 형법 161조에는 ‘사체, 유골, 유발 또는 관내에 장치한 물건을 손괴, 유기, 은닉 또는 영득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법규를 들어 진도동학농민군의 유골을 화장하겠다는 것은 매우 졸렬하고 반역사적인 처사였다.

역사적 의미가 큰 유골의 보존방안을 정부나 전주시가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내놓은 몰상식한 처리방안에 불과했던 것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진도군 등 이 ‘유골의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서자 문체부는 뒤늦게 보존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3월 15일 전주시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 공문을 통해 ‘유골의 화장과 봉안식을 잠정 보류할 것’을 통보했다. 또 문화재청에 ‘유골의 문화재 지정이 가능한 지 여부를 판단해 조속한 시일 내에 통보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에 따라 현재 문화재청은 ‘유골이 문화재로 등록가능한 지’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

진도출신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에 대해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보존 찬성자들은 “동학군을 무참히 학살했던 일본군의 행위와 그 인골을 화장하려는 문화재청의 행위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며 “동학군의 유골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이자 아픈 역사의 증거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글/박주언·정리/최혁 기자 kjhyuckchoi@hanmail.net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