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 사고 과실 기준 따라 유·무죄 달라져

법원, 운전자 책임 사고 예측·회피 가능성 중요시

과거 무단횡단 보행자를 차로 숨지게 한 경우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없었지만 최근에는 사고 예측·회피 가능성을 고려한 판결로 무죄를 받는 운전자가 잇따르고 있다.

운전자가 사고방지 주의 의무를 위반한 과실의 기준에 따라 책임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새벽 광주 무진대로 편도 6차로 중 1차로를 운전하다가 무단 횡단하는 이모(31)씨를 치어 사망하게 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49)씨를 무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을 맡은 양성욱 판사는 “급제동 등의 조치로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가 아니었고 진행방향을 전환해 충돌을 피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중앙분리대를 넘어 무단 횡단할 것이라는 점도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고 시간이 새벽이어서 어두웠고 이씨가 짙은 회색 상의와 검정색 하의를 입어 운전자 김씨가 발견하기 어려웠던 점도 고려됐다.

사고 도로는 왕복 12∼14차로에 폭이 64m에 이르며, 중앙분리대가 설치됐고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설치되지 않아 보행이 금지된 장소다.

검찰은 김씨가 전방 좌우를 주시하며 무단횡단 보행자 출현을 살피고 사고를 방지해야 할 업무상 주의 의무가 있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며 재판에 넘겼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도 최근 무단 횡단하는 보행자를 차로 들이받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택시 기사에 대해 국민 참여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했다.

법원은 사고가 난 도로와 인도 사이에 울타리가 있어 무단횡단을 예상하기 어려웠고, 날이 흐리고 이슬비가 내린 점, 제한속도를 준수한 점 등을 들어 운전자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무단횡단이 충분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사고를 냈다면 운전자의 과실이 인정됐다.

광주지법(당시 이태경 판사)은 지난해 11월 새벽에 9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 70대 여성을 차로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운전자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거리가 어둡지 않았고, 사고 장소에 익숙해 무단횡단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했다.

지난해 1월에도 밤 시간에 편도 8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 보행자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하고 도주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가로등이 설치돼 도로가 밝았고, 도로 양쪽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으며 도로와 인도 사이에 가드레일이 설치되지 않아 무단횡단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점 등을 유죄의 근거로 들었다.
/노정훈 기자 hun7334@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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