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영국의 신고립주의(브렉시트)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영국의 신고립주의(브렉시트)
 

<최혁 주필>

조선말 흥선대원군(1820~1898년)이 실시한 쇄국정책(鎖國政策)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다. 쇄국정책은 나라 문을 꽁꽁 닫아걸고 외국과의 통상을 거부한 정책이다. 어떤 이들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제국주의자들의 탐욕과 침략에 맞설 수 있었던 유일한 방책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으려 할 때 조선은 이를 막아낼 외교역량이나 힘이 없었다.

대원군은 ‘척화비’(斥和碑)를 전국 곳곳에 세우고 외국의 상인들과 군대가 조선 땅에 상륙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의 침입에 맞서 싸우지 않는 것은 화평하자는 것이며 싸우지 않고 화평을 주장하는 자는 매국노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대원군이 집정하는 동안 조선은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의 대동강 운항을 비롯,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와 같은 조선을 침략하려는 세력들의 도발을 계속 겪었다.

당초 대원군은 천주교 신부들을 우호세력으로 삼아 외국세력들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이는 대원군의 오판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를 건설하기 전에 선교사들을 보내 현지인들의 경계심을 풀고, 우호세력으로 삼았다. 천주교 신부들은 종교적으로는 조선인을 위했으나 정치적으로는 자국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천주교의 교리는 조선의 전통적인 가치와 사상에도 어긋났다. 결국 대원군은 천주교인들을 박해하고 쇄국을 더욱 강화시켰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실패한 정책이었다. 최선의 정책이기는 했지만 조선의 가냘픈 힘으로는 탐욕으로 채워진 제국주의 국가들의 거센 도전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대원군은 ‘하늘아래 가장 강대했던 청나라’가 속절없이 영국과 프랑스에 무릎을 꿇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서양강대국들에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선 땅에 외국인들이 발을 딛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조선을 지키는 길이라는 맹신에 빠져든 것이다.

쇄국정책이 결국 ‘실패한 정책’이었다는 점을 들어 다른 이들은 세계정세를 읽지 못한 대원군의 무지를 조선쇄락의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상황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당시 대원군과 조선 관리들은 세계열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었다. 결국 조선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1876년에 강화도조약을 체결하고 쇄국정책을 포기했다. 이때부터 일본을 비롯한 세계열강들의 조선수탈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150여 년 뒤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브렉시트(Brexit)다. 브렉시트는 말 그대로 브리티쉬(British: 영국인)가 유럽 연합을 탈퇴(Exit)한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영국은 지난 24일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했다. 영국 국민들은 고립화를 선택했다. 유럽연합에 대한 재정 부담을 줄이고, 이민자들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고육지책이다.

이민문제에 한정해 보면 아프리카 계열 이민자들의 급증은 150여 년 전 아프리카 각국을 식민지로 삼았던 유럽 제국주의가 뿌린 씨앗의 결과다. 부메랑, 혹은 자업자득이랄 수 있다. ‘피식민지 국민들의 역습’이다. 시리아는 과거에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브렉시트는 견고했던 유럽연합에 균열을 가져왔다. 19세기 중반 식민지 건설을 주도했던 프랑스와 영국을 궁지로 몰아넣은 브렉시트 유발 원인 하나가 시리아 난민이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영국 땅으로 밀려들어온 시리아 난민들은 영국의 고용시장과 복지를 흔들었다. 견디다 못한 영국은 문을 걸어 잠갔다. 개방된 시장경제와 국경 없는 유럽 공동체를 향유하다가 권리보다 감당해야할 책임이 더 커지기에 발을 뺀 것이다. 브렉시트는 영국인의 지나친 자긍심과 공동체적 삶에 대한 회의, 그리고 보수회귀주의가 낳은 결과랄 수 있다. 대원군의 쇄국이 열패(劣敗)에서 온 것이라면, 브렉시트는 지나친 자만과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쇄국의 길을 택한 영국은 쇄락할까? 현재로서는 그럴 우려가 크다. 난민 수는 줄어들겠지만 영국경제는 상당기간 위기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브렉시트는 인류정신사에 있어 암흑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브렉시트는 쉽게 말하면 ‘혼자 잘 살겠다고 살림 따로 차린 가족’이다. 공동체를 외면한 사람의 끝이 좋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사회에도 혼자만 잘 살겠다고 공동체적 규범을 무시하는 코리시트(Korexit)가 참 많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