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처럼

하서처럼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길에서 선비를 만난다. 처음 만나는 선비는 하서 김인후(1510~1560)이다. 가는 곳은 전남 장성군 황룡면 맥호리 맥동마을. 필암 바위를 보고 백화정, 난산을 거쳐서 하서 선생 묘소에 이르렀다. 묘소 입구에는 신도비각이 있다. 신도비명은 송시열(1607~1689)이 지었는데, 신도비 안내문에는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 도학과 절의와 문장을 모두 갖춘 하서 김선생을 태어나게 했고,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백세(百世)의 스승’이라고 적혀 있다.

묘소에 이르렀다. 묘는 ‘문정공 하서 김선생지묘, 증 정경부인 여흥윤씨부좌’라고 적힌 묘비가 있고, 묘비명은 김수항(1629~1689)이 지었다.

김수항과 송시열은 노론의 영수인데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나중 경종)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것에 반대하다가 김수항은 진도에서, 송시열은 정읍에서 사사(死賜)되었다.

김수항의 양할아버지는 청음 김상헌(1570~1652)이다. 병자호란 때 주전론자(主戰論者)로서 중국 심양에서 감옥살이를 한 절의파(節義派).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남긴 시조는 너무나 비장하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한편 김상헌은 하서의 절의(節義)를 기리는 시를 지었다. 그의 시가 필암서원 청절당(淸節堂)에 걸려 있다.

담옹(湛翁)의 풍절(風節)은 나의 스승이라/ 굳센 글씨 맑은 시 뛰어남을 독차지 했네/ 당시에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스러워 마시오/ 후대에는 도리어 별운(別雲)이 있었음을 알리니.

#2. 하서 선생 묘소를 둘러보다가 불현듯 몇 년 전에 갔던 안동의 퇴계 이황(1501~1570) 묘소가 생각났다. 퇴계 선생 묘비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도산으로 물러나 만년을 보낸 진성 이씨의 묘)’라고 적혀 있다. 묘비명은 고봉 기대승(1527~1572)이 지었다. 퇴계와 고봉은 8년간 사단칠정논변을 하면서 13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기대승은 김인후와 인척이다. 고봉 딸이 하서의 손자며느리가 되었는데 기씨부인은 정유재란 때 정절(貞節)을 지킨 열부(烈婦)였다.

한편 하서와 퇴계는 1533년에 성균관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기묘사화가 일어난 뒤라 사람들이 모두 학문하는 것을 기피하고 희학(戱謔)하는 것으로 나날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데 하서와 퇴계는 오직 서로 뜻이 맞아 왕래하며 끊임없이 강마(講磨)하였다. <하서전집 부록 권1 ‘행장’>

하서는 1540년 문과 급제 후 1년 뒤에 독서당에서 퇴계를 다시 만났다. 독서당 동문은 나세찬(1498~1551)·임형수(1514~1547)·정유길 등 13명이었다.

영남에 퇴계가 있다면 호남에는 하서가 있다. 두 사람은 함께 문묘에 배향되었다.

#3. 최근에 ‘퇴계처럼’ 책을 읽었다. 저자 김병일은 성리학자 퇴계가 아닌 일상적 삶에서의 퇴계를 그렸다. 여기에는 퇴계의 가정사(家庭事)가 소개되어 있어 재미를 더한다. 제사 음식을 집어먹은 둘째 부인 권씨, 33세 나이에 과부가 되어 7남매를 키운 어머니 박씨. 태어난 지 7개월에 부친이 별세하여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란 퇴계.

하서의 가정사도 한편의 드라마이다. 하서는 아들 셋과 딸 넷을 두었다. 하서의 큰 며느리는 유학자 일재 이항의 딸이고, 첫째 사위는 조희문, 둘째 사위는 소쇄원 주인 양산보(1503~1557)의 차남 양자징, 셋째 사위는 미암 유희춘(1513~1577)의 외아들 유경렴이다. 하서는 미암이 함경도로 유배 갈 때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셋째 딸을 며느리로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셋째 아들은 요절하였고 13세 막내딸도 1545년 7월에 죽었다. 하서는 그 슬픔을 시에 담았다. 또한 소쇄원으로 시집 간 둘째 딸도 1550년에 죽었는데 하서는 슬픔을 제문으로 남겼다. 그리고 1557년에 양산보가 별세하자 하서는 ‘이제 며느리이자 자기의 딸도 저승에서 보겠노라’고 만시(輓詩)를 썼다.

‘퇴계처럼’ 책처럼 ‘하서처럼’ 책도 발간되었으면 한다. 하서의 정한(情恨)을 한껏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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