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강의-우치야마 도시히코

<김용표의 북칼럼>

순자강의-우치야마 도시히코
 

우치야마 도시히코의 ‘순자(荀子)-고대사상가의 초상’(돌베개)을 접하기 전에는 순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맹자의 대척점에 서 있는 고대 유가사상가 중의 한 명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순자야말로 2000년 유가사상을 집대성하고 유가사상의 전통을 확립한 사상가라고 한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그가 선할 수 있는 것은 수양에 의한 것일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악설(性惡說)의 주창자이긴 하지만 교육으로 인간의 본성을 극복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비판론자(특히 12C 이후의 성리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주장한 순자의 염세적 인간관만을 집중적으로 부각한 탓에 그는 오랜 기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중국의 전국시대 말 순자는 수많은 사상, ‘제자(諸子)’의 집성자이자 종결자로서 역할을 했었다. 오랜 시간 유가(儒家)에서, 공맹(孔孟)은 구름 위의 숭고한 이념과 도(道)를 위정자에게 심으려 했다면 순자는 좀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사상과 규범을 사회 전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려 했다. 땅위에 뿌리를 내리려 한 ‘현실 유교의 시조’라 볼만하다. 유교가 중국 왕조의 정통사상으로 확립되고 유교에 의한 사상통일이 진척될 수 있는 근간에는 순자의 철학이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의식이 그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주장으로 유물론 사상의 일단을 보였었다. 마르크스와 순자의 사상을 동일하게 볼 수 없지만 순자 역시 ‘천인지분 성위지분(天人之分, 性僞之分)’이라는 주장을 통해서 마르크스적 인간관을 피력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즉, ‘천인지분’이란 외적 자연으로서의 천(天)과 인간의 분리, 즉 자연에 대해 인간이 능동적 존재임을 주장했다. 이 점은 당시의 문명 수준으로 볼 때 상당히 혁명적이다. 또 인간 내부에서의 성(性)-위(僞)라는 개념을 이용해 인간의 작위적 의지를 통한 도덕적 규범을 실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즉 성위지분이다. 인간은 내적 자연인 ‘성(性)’에 대해 ‘위(僞)’ 즉 작위를 통해 내적 통제를 하는데 이러한 내적통제의 조절 기준이 ‘예(禮)’라는 것이다. 순자에 의하면 ‘禮’란 단적으로 말해 ‘分’,즉 구분하는 것이다. ‘예’란 구분되는 것이고 터부를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프레이저는 사회발전 속에서 터부가 여러 가지 사회질서와 도덕규범으로 바뀐다는 것을 지적했다. ‘인간은 부정형의 자각에서 긍정형의 도덕규범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주장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도 있다. 순자는 예(禮)를 매개로 유가적 이념과 정치상황의 현실을 접목시키려 하였고 그가 꿈꾸었던 ‘禮의 왕국’을 건설하려 한 것이다.

순자 이후의 철학적 계보를 살펴보면 한비자, 이사 등이 순자를 스승으로 하여 자신들의 통치철학인 법가적 사상 혈맥을 이루었다. 또 한비자 등을 이어 받은 육고, 가의, 한영, 동중서로 내려가면서 유가사상은 점점 더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실체적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즉 사상과 정치가 이론적 허구성을 극복해 가며 동일체를 구성한 것이다. 공맹의 사상이 종교적 실체를 갖추게 했다면 순자는 유가의 사상을 집약하여 정치적 실체를 갖게 한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는 어찌 보면 순자의 품속에서 공맹을 숭모하며 일생을 보낸 것이리다.

이제 오늘을 사는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는 유교적 전통과 규범인 ‘예’ 사상이 남아 있는가? 서양문명에 비해 훨씬 품격과 여유가 있었던 공동체의 규범들이 깡그리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예’도 ‘배려’도 사라지고 막무가내의 자기주장과 고집만이 남아있는 무섭고 불편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 누구도 온 사회에 만연된 ‘비례(非禮)’와 ‘무례(無禮)’를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극단적 사춘기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이 선진사회로 가는 통과의례라는 안이한 의식은 모든 것을 붕괴시킬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마지막 한계선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아이와 어른 모두를 대상으로 예(禮)와 공동선을 제시하고 가르치고 함께 실천해야 할 절박한 지경인 것이다.

<백제고등학교 교장>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