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江)도 생명체다

강(江)도 생명체다

<박상신 칼럼니스트>
 

내 고향은 광양 땅, 섬진강 기슭에 자리한 자그마한 어촌 포구다. 그곳은 섬진강이 마지막으로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섬진의 강물은 사백 여리 길을 쉼없이 흘러 마지막 여운을 간직한 채 남해로 향한다. 그래서 그곳은 늘 반가움의 밀물과 미련을 간직한 썰물이 공존하며 생명의 근원을 만들고 숱한 사연을 토해 내는 곳이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발아한 섬진강은 남원과 곡성, 구례와 하동을 거쳐 광양으로 흐르며 수많은 사연을 뒤로한 채 영겁의 세월을 흘러내렸다. 세월의 흐름 속, 무던히도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삶의 근원이 된 강이다. 그래서인지 섬진의 강줄기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동편제와 서편제란 삶의 노랫가락을 탄생시켰고 그도 모자라 화계장터와 같은 영호남 사람들의 아름답고 소담스런 만남도 주선해 주었다. 강은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그려냈고, 은빛 모래를 베개 삼아 촌락의 생존권을 쥔 젖줄기로 자리매김했다. 강 주위엔 늘 사계가 존재했다. 봄이면 매화와 벚꽃이 만발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시원한 강바람이 청춘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찬란한 여름도 함께했다. 가을이 오면 오색의 단풍이 산하를 색동옷으로 물들였고, 겨울이면 따스한 담요 위를 흐르는 한줄기 빛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섬진강은 스승과도 같은 묵언의 수행자였다. 그 속에는 생명의 근원이 존재했다. 평상시엔 정화의 요정처럼 흘러내렸다. 하지만 폭우가 내리는 날엔 거친 토사를 뿜으며 유속을 스스로 조정, 맑은 강을 유지하며 그가 지키려는 대지와 사람들의 수호신임을 자청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의 먹거리와 아름다운 풍광을 가져다준 섬진강이 내겐 늘 어머니의 품 속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섬진강을 바라볼 때면 4대강이 떠오른다. 지금의 4대강은 어떠한가! 수천 년을 흘러온 강줄기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했다. 4대강 정권은 치수를 목적으로 금수강산의 젖줄인 4대강에 메스를 들이대며 그들만의 수술대에 올려놓았다. 국민의 혈세를 수십조나 쏟아부으며 멀쩡한 4대강을 흉물스런 인공미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에게 어떤 이권이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번갯불에 콩 볶듯 순식간에 수십개 보가 세워지고 강물의 자연유속(정화 작용)을 없애버렸다. 그들은 강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짓밟은 채 담수화하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4대강 정권의 치적이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그 결과는 어떤가!

강물엔 악취가 진동하고, 그것도 모자라 더는 물고기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강으로 변해버렸다. 유럽 선진 국가에는 수로나 강을 재정비하는 데 수십 년을 연구한 후 재정비해 나가고 수많은 공청회를 거쳐 주민들의 의견 수렴과 동의를 구한다. 그리고도 환경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정책에 반영한다. 반면에 우리 4대강은 그 정권의 졸속 행정이 낳은 참극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수년이 흘러 지금의 정권도 무슨 이유인지, 4대강에서 일어난 참상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무엇이 그 엄청난 비리를 현 정권에서도 덮을 수밖에 없는지 반문해 본다.

요 근래 경상도 어느 자치단체장의 오만한 인터뷰가 떠오른다.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4대강이 망가진 근본적인 원인이 “생활 오폐수와 가축 농가가 무단 방류한 폐수가 주범”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 전에도 그것은 있었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다. 그야말로 국민을 무시하는, 정말 오만방자한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느 새 한반도의 중심 혈류인 4대강이 썩어 문드러지고 위정자들의 입에서도 비리의 악취가 진동한다. 수천 년을 흘러온 4대강이 지금 응급실 안,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신음하고 있다.

강도 생명체다. 녹조라테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썩어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민초들의 성난 눈빛을 보라! 4대강의 신음소리를 들어보라! 그 물을 먹고 신음하는 대지의 한 맺힌 곡성을 들어보라! 자연의 훼손이 훗날 어떤 재앙으로 다시 돌아오는 지를 그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난 민심의 칼끝이 어디를 겨누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4대강을 기획하고 연출한 사람들이여!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오리라! 대지의 서슬 퍼런 칼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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