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김주완 광주테크노파크 기업지원단장>
 

DK산업의 김호곤 회장이 신제품 얘기를 꺼낸 건 지난 해 여름이었다. 그는 가전업체들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광주시의 지원을 요청했다. 시 전략산업본부와, 기업체, 연구&지원기관 대표들이 상생협업팀의 이름으로 모였다. 수차례 미팅을 하고 골격을 가다듬어 ‘2016 광주형 공동브랜드-가전협력업체 지원사업’을 마련했다. 독자적인 상표로 시장개척을 원하는 기업들은 반색했다. 모든 협력업체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한 건 아니지만 기술력을 가진 중견기업이 선도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대기업에 목줄을 잡히지 않겠다는 의지표현만으로도 이 사업은 충분히 ‘착한 도전’이다. 향후 디자인센터에서 이름을 지어주면 지역의 건설협회, 주택협회와의 협력방안이 모색될 것이다. 해동 레인지, 주방용 살균기, 의류 건조기 등 현재 제작중인 것들은 주로 빌트인(BUILT-IN) 제품들로 지역의 관련업계 협조가 필수적이다. 과거 브랜드사업의 실패경험이 있다고 함부로 평가절하 돼선 안 된다. ‘공동브랜드’ 사업은 대기업이 빠져 나간 후의 생존전략에서 출발했다. 생산라인이 멈춰진 극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눈물겨운 싸움이다. 품질과 디자인, 홍보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지만 내 제품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점에서 광주다운 면모가 넘친다.

광주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인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다. 임금문제 해결방안의 하나로 시작된 ‘광주형 일자리’다. 2012년 박병규 전 기아차 노조위원장. 산업계의 모순을 현장에서 직시한 그의 가슴앓이는 일자리 해법의 논리 틀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종종 얘기를 꺼냈지만 다들 이상적인 얘기로만 치부했다. 이 얘기를 귀담아 들었던 사람이 있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었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14년 초봄, 직접 독일 수투트가르트를 방문했다. 폭스바겐사로부터 ‘아우토 5000’ 설명을 듣고 확신이 섰다. 다녀온 직 후인 3월 30일, 광주시장 출마선언을 하고 ‘광주형 일자리’란 이름을 붙여 구상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2년 뒤, 자동차 100만대 예타사업 계획서가 결정적이었다. 조심스럽게 구색맞추기로 계획서상에 자리를 잡은 이 단어는 정부 관계자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수정사업계획서에는 ‘광주형 일자리’가 강조됐다. 3천억의 최종 예타 통과로 이제 이 구상은 한국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시험대로 인식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왜 강조되는 것일까? 정부는 해외이전 생산시설의 국내복귀 정책인 리쇼어링(reshoring) 사업을 2013년도부터 펼쳤다. 그러나 돌아온 대기업은 단 1개사. 그 와중에도 삼성 광주공장은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지난 9월 8일에는 기아차의 네 번째 해외공장 가동소식이 들렸다. 멕시코공장이 본격 가동되면서 53초에 차량 1대를 생산한다는 뉴스다. 자동차 생산공장 증설요구는 소귀에 경읽기가 됐다. 대기업 회귀는 요구만으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요소들이 마련돼야 한다. 임금수준과 노사관계를 광주만의 방법으로 바꿔보자는 것이 ‘광주형 일자리’의 본질이다. 그러니 노사민정이 중심이 된 사회적 협약을 광주의 이름으로 마련해야 한다. 성공한다면 벤치마킹이 될 것이다. 여러 산업분야에 광주의 매뉴얼이 적용될 수 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광주의 눈물겨운 준비과정을 기억해 달라. 내년 예산 반영에서 정부의지가 강하게 읽혀지길 바란다.

‘광주형’이라는 접두사는 독창성을 함축한다. ‘The’의 의미를 갖는 유일무이한 이름이 될 것이다. 그것에는 조건이 내포돼 있다. 지명을 내세웠으니 시민이 담보가 된다. 시민담보 운운에 대해 용서하시라. 척박한 광주에서의 창의적 활로 찾기인 까닭이고 시민권력이 추동돼야 성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광주산업은 취약하다. 2년 전에 비해 기업회생 신청률이 48%나 증가했다. 이 바탕에서 먼저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광주라는 이름의 거울을 들여다보자. 한의 모습, 고통과 불만의 표정 대신 미래비전으로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