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창 임방울과 쑥대머리

국창 임방울과 쑥대머리

<최혁 남도일보 주필>
 

‘소리’를 얻기 위해 폭포 앞에서 피를 토하며 소리를 지르는 이들이 있다. 소리꾼들이다.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목소리다. 그들은 폭포 앞에서, 혹은 토굴 속에서 소리를 지르며 목을 만든다. 그들은 목에서 피고름이 나오는 것을 목이 터지기 시작한 조짐으로 삼는다. ‘창’(唱)을 하는 소리꾼들은 폭포와 토굴에서 소리 지르며 울림과 메아리를 이기는 것을 ‘독공(獨功)’이라 한다. ‘산 공부’라고도 불렀다.

‘산 공부’는 과거 득음(得音)하기 위해 소리꾼들이 해오던 ‘백일 공부’다. 외로우면서도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소리꾼 한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은 험난하고 치열했다. 과거 소리꾼들은 선배 소리꾼들을 이겨내지 못하면 ‘명창’(名唱)이 될 수 없었다. 선배 소리꾼들보다 소리가 더 넓고 깊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 아닌, 군학일봉(群鶴一鳳)이 되기 위해서는 미성(美聲)과 걸걸함을 고루 갖춘 튼튼한 목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임방울(林芳蔚)은 처절한 ‘산 공부’를 통해 제대로 된 소리를 얻은 사람이다. 그의 목소리는 뱃속에서 뽑아 올린, 깊고도 애절한 것이다. 쉰듯하면서도 칼칼하다. 쉰 목소리처럼 껄껄하지만 비수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인 ‘수리성’을 내지른다. 옥에 갇힌 춘향의 애통한 마음이 그의 목소리에 담겨 내질러지면, 사람들은 절로 애간장이 녹아 흘러내린다고 했다. 그가 소리를 높이면 사람들은 가슴을 조였고, 소리를 낮추면 절로 눈물을 흘렸다.

명창 임방울은 그렇게 ‘소리’로 사람들을 홀렸다. 임방울이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쑥대머리’다. 광주와 구례 등지에서 소리를 배우던 그는 1928년 매일신보사가 주최한 조선명창연주회에서 ‘쑥대머리’ 한 대목을 부른다. 깊은 배속에서 끌어올린 통성에, 칼칼하면서도 높은 소리에, 막힘이 없는 그의 목소리에, 청중들은 매료당했다. 걸쭉하면서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춘향의 마음을 애절하게 노래하는 임방울에게 사람들은 빠져들었다.

쑥대머리는 목에 형틀(칼)을 쓰고 옥에 갇혀있는 춘향이의 머리가 서로 엉켜 삐죽삐죽 쑥대처럼 솟아오른 것을 이른 말이다. 얼굴은 창백하고 머리는 산발이어서 귀신처럼 보이는 춘향의 모습이 첫 머리에 나온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 손가락 피를 내어 사정으로 님을 찾아볼까 간장의 썩은 눈물로 님의 화상을 그려볼까…”노래는 그렇게 이어진다.

쑥대머리는 시골소리꾼 임방울을 하루아침에 명창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콜롬비아 레코드사가 제작한 ‘쑥대머리’ 레코드는 120만장이나 팔렸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판매량이다. 임방울이 후에 작곡한 ‘호남 가’ 역시 인기를 끌었다. 임방울이 사랑했던 연인 김산호주를 잃고 부른 ‘추억’은 간장을 끊어내는 그 애절함에 듣는 이들은 땅마저 꺼지는 듯싶다. 추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노제 때 안선숙 명창이 부른 노래이다.

임방울의 본명은 임승근(林承根)이다. 방울은 예명이다. 그가 어렸을 적 스승이 승근의 소리를 듣고 “너야말로 은방울이다”라고 말한 것이 예명이 됐다고 전해진다. 1904년 전남 광주군 송정면 수성마을(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도산동)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소리꾼 집안이었다. 그가 명창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피를 토해내며 치른 산 공부 탓도 있지만 천부적인 소질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임방울은 소리로 조선민족을 울리고 웃기다가 1961년 3월 56세로 세상을 뜬다. 뇌졸중이었다. 계속되는 공연에 힘들어하는 임방울에게 주위사람들이 좀 쉬라고 권유했지만 그는 “소리하는 사람이 소리를 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소리에 대해 “한(恨)이라는 여물을 먹고 내는 울음소리”라고 말했다. 작가 이청준은 생전에 “임방울의 한 곡조를 들으면 삭신이 노곤 노곤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기리기 위한 ‘임방울국악제’가 오는 23일부터 나흘일정으로 시작된다. 전야제는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24일부터는 광주향교 유림회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임방울 판소리 장기자랑’이 펼쳐진다. 광주가 낳은 소리꾼 임방울을 기리는 이번 국악제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술병(酒病)은 술로, 사랑 병은 사랑으로 푼다고 했다. 쑥대머리처럼 거칠고 험한 세상, 그가 가슴으로 뽑아 올렸던 쑥대머리 한 대목을 듣고 잠시나마 풀 수 있다면 그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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