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과 의병장 박광전

정유재란과 의병장 박광전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정유재란은 전라도에게는 재앙이었다. 1593년 7월에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 시무국가’라고 갈파하였듯이, 임진왜란 초기에 전라도는 왜군이 전혀 발붙이지 못했다.

그런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전라도부터 초토화했다. 야만적인 살상과 납치를 하고 코를 베어 갔다. 약탈과 방화도 자행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재침략을 준비하면서 임진왜란 5년 동안에 조선 침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과,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해 식량 조달에 차질을 빚은 것을 주된 이유로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재침략 지시를 치밀하게 내린다. 먼저 이순신을 제거하여 조선 수군을 궤멸시킬 것, 전라도부터 쳐들어가서 누구든지 참살할 것, 충청도와 경기도는 정세에 따라 진격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먼저 일본은 이중간첩 요시라를 이용하여 이순신 제거작전에 성공하였고, 7월 16일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을 전몰시켰다.

8월 16일에 왜군은 남원성을 함락시켰다. 그러자 명나라 진우충은 전주를 버리고 도망쳤고, 8월 18일에 왜군은 전주에 무혈 입성했다. 이 때 전라감사 황신과 고을의 수령들은 관아를 버리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황신은 전주 감영에서 부안 변산으로 피신했고 영광군수, 고창현감, 정읍현감, 옥과현감, 진원현감, 평창현령 등 도망간 수령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나라를 지켜야 할 감사와 수령들이 먼저 도망치다니, 참으로 한심했다.

선조도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명군 지원을 요청했다. 9월 7일에 직산에서 명군과 왜군이 일대 격전을 벌였다. 다행히도 명군은 왜군을 대패시켰다.

이러자 왜군은 남하하면서, 9월 16일에 정읍에서 회의를 했다. 이 회의에서 시마즈, 나베시마 부대 13명의 장수들이 전라도에 주둔하기로 했다.

시마즈 부대는 광주·담양·창평· 동복· 능주 · 화순을 장악했다. 왜군들은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코를 베었으며 산하를 불태웠다. 이러자 백성들은 산속으로 숨고 배를 타고 피난 가기에 바빴다. 심지어 어떤 이는 강원도로 피난가기도 하였다.

72세의 죽천 박광전(1526-1597)도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으로 피신했다. 10월에 생원 박사길이 숲속에서 나와 말하였다.

“국가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의병을 일으켜서 국가의 일에 죽는 것이 옳소이다”하였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박광전을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박광전은 “난리는 날로 급박해지고 나의 병세도 날로 위중하니 나는 곧 죽을 것이요. 그러나 한 줄기 목숨이 아직 붙어 있으니 맹세코 이 왜적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살 수는 없소” 하고 결속을 다졌다. 박광전은 전 판관 송홍렬을 부장으로, 둘째 아들 박근제를 종사관으로, 박사길·박훈 등을 선봉으로 삼았다.

박광전 의병은 동복현(지금의 화순군 동복면)에서 시마즈의 왜적을 물리쳤다. 보기 드문 값진 승리였다. 당시에는 의병장 김덕령의 억울한 옥사로 인해 의병으로 나선 이도 없었지만 설령 나섰어도 패전하여 순절하였다. 장성의 윤진과 변윤중이, 구례 석주관 전투의 칠의사가 그러했다.

그런데 관아를 버리고 도망간 고을 수령들은 관내를 이탈한 죄도 큰 데 박광전의 공을 시기하여 전라감사 황신에게 모함하였다. 황신은 박광전을 전주감영으로 불러 조사했다. 박광전은 참담했다. 의병으로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관리들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다니.

전주감영에서 조사를 받은 박광전은 화순으로 내려오는 길에 조상의 묘소가 있는 진원현(지금의 장성군 진원면)에 들렀다. 그리고 11월 18일에 세상을 떴다.

임진왜란 7년간의 박광전의 일생은 그야말로 질곡의 역사이었다.

1592년 7월에 전라좌의병을 일으켰으나 병이 깊어서 참전하지 못했고, 대신에 두 아들을 참전시켰다. 1593년 말에는 전주에서 광해군에게 ‘민생이 우선’이라고 건의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다시 의병장이 되어 왜적과 싸우다가 세상과 이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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