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흔들리니 천만다행이다?

땅이 흔들리니 천만다행이다?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천만다행이다.’ 어느 분의 텔레비전 강의에서 들었다. 어떤 일이 되면 의당 기뻐하겠지만, 일이 안되면 오히려 정말로 더 좋다는 느낌으로 오는 말씀이다. 그분의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그 말씀이 뇌리에 각인됐는지 자주 생각난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한 참뜻은 잘 헤아리지 못하겠으나, 일이 잘 안되면 대오각성하고 문제의식과 문제인식을 새롭게 할 기회가 생기니까 정말로 기뻐해야 하지 않느냐는 뜻으로 해석해봤다.

한자를 분해하여 나름대로 상상하여 풀어보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이제 우리말도 분해해서 그 말의 본래 일차적인 뜻이 뭣인지를 생각한다. 국어 전공자에게는 그런 일이 모순투성이 말장난으로 비칠 거다. 어쨌든 내 방식으로 풀지 않으면 말의 뜻이 내 세포에 각인되지 않기에, 누가 뭐라 해도 내 방식을 버리고 싶지는 않다.

깨닫다. 깨달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깨닫다’는 ‘깨다’와 ‘닫다’로 분해된다. ‘깨다’를 넣어 말을 만들어 본다. 컵을 깨다. 돌을 깨다. 잠을 깨다. ‘닫다’는 ‘닿다’의 변형으로 보고 싶다. 두 말의 소리가 비슷하다. ‘닿다’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맞붙어 사이에 빈틈이 없게 되다. 어떤 곳에 이르다. 소식 따위가 전달되다. ‘깨닫다’를 터득한 사람은 아마도 도력이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빈틈도 없고, 그의 말은 누군가에 잘 전달될 거다. 잠을 깨고, 머리를 깰 정도로 용맹하게 수련한 결과로써 비범한 수준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깨닫다’를 풀이하니, 조금은 그럴듯하다.

비약으로 비치겠지만, ‘깨닫다’의 선행조건은 ‘깸’이다. 말하자면, ‘꿈에서 깨다’처럼 각성이다. ‘돌을 깨다’에서 유추되듯이, ‘깸’은 창조적 파괴이다. 나를 깨지 않고서는, 내가 깨지지 않고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는 닿지 못한다. ‘깨닫다’의 대전제는 깸이요, 깨짐이다.

최근 잇따른 상당히 강력한 지진을 마음 편하게 바라보기는 힘들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대형 물세례를 받아왔기에 더 그렇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약한 지진의 발생에 관한 뉴스가 많았음에도 결과적으로 일부 당국자는 머리를 깨지 않았다. 머리를 깰 정도로, 60년대와 70년대에 어느 지도자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로 기억되는 ‘발본색원’을 고민할 정도로 예민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지진 대응책이 모가 나는 방책(方策)이지 못하고 어느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는 둥그스름한 원책(圓策)이 되지 않으면 아침에 서쪽 하늘부터 환해질 거다. 그 나물에 그 비빔밥이다. 머리를 깨지 못하니, 재탕, 삼탕, 사탕이다. 샘물은 퍼내고 퍼내면 더 맑은 물이 나오지만, 여러 번 우린 탕약은 맹탕이지 않은가.

틀리기를 바란다. ‘아직 우리나라 땅은 제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땅 흔들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래도 저래도 자주 흔들릴 바에는 어느 한 번이라도 제대로 흔들리면 천만다행이다. 2014년 세월호 4·16사변을 모태로 ‘국민안전처’가 출범했는데도 최근 지진에 대한 중앙정부의 대응은 4·16사변을 제대로 성찰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부채질한다. 아주 못된 생각이지만, 4·16사변보다 더 큰 재앙이 일어날 정도로 땅이 흔들려야 머리를 깨고 비로소 모가 나는 방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려나?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그 질이 바뀌려면, 물은 섭씨 100도가 될 때까지 가열되어야 한다. 사물이 통째로 확 바뀌려면 질적 전환을 강제할 정도의 충격을 가해야 한다. 즉, 사물이 변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사물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관성을 지니기에, 그 관성을 깨고도 남을 만큼 위협이 가해져야 한다. 사람은 사물의 부분집합이기에 사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환골탈태하기 어렵다. 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관성이 강하다고 생각되기에 ‘깨닫다’의 선행조건이 잘 작동하지 않을 거다.

애국가라도 소리 높여 부릅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땅이 흔들려도 우리나라는 하느님이 보우하기에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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