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과 맹종으로의 복귀

획일과 맹종으로의 복귀

<최혁 남도일보 주필>
 

역사에 가정(假定)을 대입해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매혹적이다. 상상은 현재의 곤궁함을 잠시라도 잊게 해준다. 요즘처럼 수상한 세월에는 더욱 그렇다. 서울이나 광주나 시끄럽다. 역사가 후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새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던 북소리가 마치 어제인 듯 싶은데 음률은 어느 사이 장송곡으로 바뀌어져 버렸다. 사회 곳곳에 획일과 맹종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도돌이표가 붙여져 있는 것 같다.

여당대표는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당보다 대통령을 지키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대통령을 흔들지 말라며 일갈하더니 급기야 국회의장을 상대로 7일간의 단식을 벌였다. 국민의 눈높이에 들지 못한 장관을 두둔하며 임명을 강행한 정권을 수적으로 우세한 야당이 ‘뜨거운 맛’ 좀 보여준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여당대표는 본질을 외면하고 절차를 문제 삼았다. 강경모드로 일관하더니 청와대의 만류로 고집을 꺾었다.

여당대표가 ‘당무수석’ 노릇이나 하던 것은 지난 70년대에나 볼 수 있던 풍경이다. 유신시절에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민의보다는 박심(朴心)을 헤아려 거수기 노릇에 충실했다. 아예 유정회라는 것을 만든 뒤, 대놓고 그랬다.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가 끝난 지 3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한국의 정치시계는 여전히 그 자리다. 지금 세월은 2016년이지만 새누리당의 당사시계는 1970년대에 머물러 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하명에 따를 뿐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을 말아먹은 친 박들은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권을 잡은 뒤로는 발호하고 있다. 계속해서 권력을 거머쥐려는 당권파들의 암중모색은 반비어천가(潘飛御天歌)를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 국내 정치기반이 제로였던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친박들의 띄우기로 하루아침에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가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퇴임 후 보험용’인지 아니면 ‘수렴청정용’인지는 몰라도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광주 역시 수상한 세월이다. 시장의 인척이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는 바람에 조직과 원칙이 망가져버렸기 때문이다. ‘윤장현의 복심’(腹心)임을 내세우는 이에게 승진과 돈에 목마른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전횡이 2년 가까이 계속됐다는 점이다. 측근의 인사·사업 개입에 대한 우려가 시장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또 시장은 이를 심각하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측근의 몰락과 시장의 위기로 나타났다.

시장 측근들은 일괄사의를 표명했다. 비서관의 사표는 수리된 상태다. 윤 시장의 회생 여부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얼마나 강도 있게 인적쇄신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윤 시장은 이미 지난해 이모 비서실장의 비리연루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비록 이씨의 비리연루가 비서실장 근무 이전의 일이었다 하더라도 인선의 책임은 윤 시장에게 있다. 그래서 사람 고르고, 쓰는 일에 더욱 신중해야함에도 윤 시장에게는 그런 선구안(選球眼)이 결여된 듯싶다.

윤 시장에는 사즉생(死卽生)의 결단이 필요하다. 윤 시장을 주군(主君)으로 섬기는 이들에게도 절대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측근들 일부는 생환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이 경우 생즉사(生卽死)는 필연이다. 공멸이다. 지금 분위기로서는 무망(無望)한 듯 보이지만 그가 재선을 원한다면, 벼랑 끝 위기의식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냉정하게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에 대한 가정은 허망하지만 달콤하다고 앞에서 말했다. 쓰러져 가던 조선은 회생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정조라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백성을 귀히 여기고 개혁과 실용에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정조의 곁에는 정약용이라는 인재가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노론 벽파의 조직적 저항과 음모에 막혀 뜻을 펴지 못하다가 결국 이 세상을 떠난다. 조선이 다시 부패와 무능으로 회귀하는 순간이다.

역사학자 이덕일은 그의 저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정조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정조의 죽음은 신세대가 몰락하고 구세대가 다시 살아나는 반동의 시작이었다. 개방과 다양성의 문은 닫히고 다시 폐쇄와 획일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작이었다.” 80년대 민주화과정을 거쳐 조금씩 뿌리를 내리던 자율과 자유로움이 퇴조하고 있다. 권세가들의 맹종과 획일이 지나치다. 정조의 죽음 뒤에 맞이했던 조선의 몰락이 우리 앞에 재연될까봐, 그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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