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보, 아니면 퇴락인가?

퇴보, 아니면 퇴락인가?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퇴’를 첫 글자로 시작하는 두 글자 단어를 생각한다. 퇴진, 퇴보, 퇴락, 퇴행, 퇴색 등.

가장 긍정적 분위기를 풍기는 단어는 퇴진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기회를 주려고 퇴진한다. 스스로 하든, 강요를 이기지 못한 탓이든, 퇴진은 당사자의 의지가 표출된 행위이다. 퇴진이 있기에, 자리에서는 물러나는 사람이 있기에 그 조직은 나아감이 가능하다. 퇴진은 진보의 발단이다. 물러감은 나아감의 실마리로 보인다.

한편 표현의 적합성을 떠나서 어떤 조직이 퇴보, 퇴락, 퇴행 등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조직의 앞날은 밝지 못할 거다.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조직은 현실에 안주하는 강력한 관성에 사로잡혀서 깨어있지도 깨지지도 못하고 문제의식을 형성하지 못하여 멍들어 감을 깨닫지 못할 거다. 문제를 찾고 쟁점화하려는 의제설정(issue-making) 노력이 현실화할 리 만무하다.

어떤 색이든지 시간이 지나면 바랜다. 아무리 산뜻한 옷도 시간이 지나면 고운 때는 사라진다. 그래도 고풍스러운 맛은 남는다. 빛이 바랠 정도로 시간이 흘렀기에, 퇴색은 그래도 역사성을 갖는 개념이다. 종갓집의 빛바랜 가재도구는 종갓집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준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褪於日光則爲歷史)는 말은 헛말이 아니다.

스키를 타고 스키장을 가로질러 내려오는 행위는 퇴보도 퇴락도 아니다. 계단이 10개일 때, 상위 계단에서 맨 하위 계단으로 단번에 내려오면 퇴락이다. 세상사는 스키를 타듯이 경사진 빗금을 타고 내려오기보다는 최상위 계단에서 최하위 계단으로 펄쩍 내리뛰는 형국으로 벌어진다. 연속적 하강보다는 큰 폭의 끊어짐이 계속되는 단절적 하강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항공기에 빗대어 보면, 전자가 안착이라면, 후자는 우당탕하는 경착륙이다. 그동안 착각했다, 안착이 대부분이라고. 세상 탓인지, 정서 탓인지, 세상사는 대부분 경착륙으로 보인다.

수학의 개념을 원용하면, 세상사는 연속함수(continuous function)라기보다는 계단함수(step function)의 경로를 밟는다. 예컨대, 질의 전환이 그렇다. 상향의 질적 변화를 발전이라 하면, 발전은 상향의 빗금을 따라 올라가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계단 오르기 모습으로 봐도 좋겠다. 계단의 너비가 아주 널찍한 계단을 상상하면 되겠다. 계단의 너비는 계단을 오르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고 소비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액체인 물이 끓어서 기체로 변화하려면, 섭씨 100도가 될 때까지 가열하는 과정이 계단의 너비라 할 수 있다. 물은 그렇게 해서 기체로 질적 전환을 하게 된다. 그 역도 성립한다. 영하 0도가 될 때까지 열을 빼앗아버리면, 물은 얼음으로 질적 전환을 한다. 액체가 단단한 덩어리인 고체로 변한다. 단단한 덩어리인 얼음이 물로, 물이 수증기로 그 질이 전환하는 과정은 계단함수이다.

발전이든, 퇴락이든 모두 질적 전환이 이뤄진다면, 그 경로는 단절적인 계단함수의 형태이다. 질적 전환이 이뤄지려면, 의식적이든 미의식적이든 에너지의 비축과 소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제자리 단계마저도 지키지 못하고 한 계단 아래로 수직으로 퇴락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선거과정을 통해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사람 중 이른바 지도자 반열에 오른 사람이 구사하는 언사와 행태는 미국과 옛 소련 간의 냉전이 치열했던 40여 년 전에나 어울릴 법해서 그렇다. 현재 필자가 받는 암묵적인 심리적 억압은 10대와 20대 시절과 엇비슷하다. 거시적으로 보건대, 우리나라에서 예민한 사람은 최근 10년간 결과적으로 국민이 열기를 뺏기는 바람에 강요되는 냉전시대의 사고와 심리를 걸러내느라 힘겨워하지 않는가 싶다. 10년간 열을 뺏기는 바람에 물은 드디어 단단한 얼음덩이로 변했다. 우리는 앞은 바라보면서도 뒷걸음치면서 퇴락했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땅의 흔들림이 반복되는 세상에서는 퇴락한 맨땅이 10층보다 더 안전하다. 맨땅은 땅 기운을 뿜어주기에 에너지를 비축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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