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면…

<최혁 남도일보 주필>
 

‘호남에 인물이 없다’고 말하면 섭섭해 할 인물들이 꽤 될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으로, 또 자치단체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속으로 “내가 있는데?”그렇게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자가 말하는 것은 지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정치인을 말한다. “저분의 삶과 생각은 본받을 만하다”며 마음으로 뒤를 좇는, 그런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호남사람들은 ‘구경꾼’이다. 주연(主演)에서 조연(助演)으로 내려앉았다.

기자는 ‘호남 대선주자 부재’가 지역 정치인들 중에서 희생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희생과 양보,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지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권력을 좇아 양지(陽地)만을 전전하던 이들이 ‘국가와 민족’을 들먹이는 것을 가당치 않게 여기고 있다.

조선 후기의 화가이자 문신인 겸재 정선(鄭敾)은 재물을 어떻게 다루고 누구에게 베푸느냐에 따라 물자(物資) 굴리는 것의 이름을 달리했다. 그는 재물을 활용해 세상 백성에게 선을 베푸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했다. 또 재물을 가지고 가족과 친척을 이롭게 하는 것을 산업(産業), 세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혀가면서 가족과 친척을 이롭게 하는 것은 원업(寃業)이라고 구분했다.

겸재의 기준을 정치에 대입(代入)해보면 정치인을 3가지 나눌 수 있다. 국민을 이롭게 하는 정치인, 결과적으로는 가족과 친척만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 나라 일을 한다는 구실로 민폐를 끼쳐가며 본인과 가족만 잘 먹고 잘 사는 정치인. 대부분의 정치인은 자신이 국민을 이롭게 하는 정치인이라 여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정치인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보다는 자신을, 나라살림보다는 본인계좌의 잔고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라 여긴다.

기자는 광주·전남지역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덕목 중의 하나가 희생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희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잘못이라 믿는다. 쉽게 말해 희생을 하지 않았기에 희생의 가치를 모른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정열과 헌신이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어떤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보이는 지를 살펴보면 그 정치인의 조국관과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릇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기자가 호남의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느낀 것은 1년 전이다. 지난해 11월 18일 문성중 교정에서 열린 고 서정우 하사 흉상 제막식에서였다. 고 서정우 하사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서 전사한 호국영웅이다. 광주출신의 늠름한 청년이 조국을 위해 몸을 바쳤지만 광주는 그를 깊이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흉상이 세워진 것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였다. 그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일에 광주는 너무 무관심했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생명을 바친 광주의 아들을 기리는 이 행사에 참석한 정치인 중 국회의원은 장병완 의원이 유일했다. 남구가 지역구이고 장 의원이 해병대 장교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흉상제막식 참석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희생한 청년의 흉상제막식에 참석하는 것은 지역구를 불문하고 광주정치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 ‘당연한 자리’에 대부분의 지역정치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광주광역시장은 중국에서 열리는 정율성 선생 기념음악회에 참석하느라 불참했다. 구청장들도 오지 않았다. 구의원 몇 명만 모습을 보였다. 기자는 그때 절망했다. 그런 행사가 있는 줄 몰라서 가지 못했다고 변명하는 정치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반문하고 싶다. 그대들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숨져간 광주청년 고 서정우 하사의 묘역과 흉상 앞에 과연 몇 번이나 국화 한 송이를 두고 간 적이 있느냐고…

기자는 ‘시간관계상 애국가 제창을 생략하겠다’는 행사장의 멘트가 흘러나올 때마다 절망을 느낀다.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은 국민의 기본이다. 시간을 아낄 일이 있고, 시간을 아끼지 않을 일이 있다. 애국가 제창은 시간관계상 생략할 일이 아니다. 애국가 제창을 생략하는 행사장에서 “무슨 소리냐? 애국가 제창을 생략하다니, 우리 모두 1절만이라도 부릅시다”고 나서는 정치인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그렇다. 나보다는 조국과 민족을 항상 염려하는 이가 지도자다. 조국을 위해 희생한 분들의 숭고한 뜻을 잊지 않는 이가 지도자가 될 인물이다. 큰 목소리로 애국가 4절까지를 즐겨 부를 수 있는 이가 큰 지도자가 될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라면 내 주위 사람 모두를 끌어 모아 힘을 보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도자가 되고 싶으면 희생해야 한다. 또 희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그런 이가 ‘호남의 대장’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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