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정벌레

딱정벌레
<문상화 광주대학교 국제언어문화학부 교수>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어제 과음을 하지도 않았고 요즈음 특별히 무리를 한 것 같지도 않다. 어젯밤 실내온도도 알맞았고 창문을 열어놓고 잠든 것 같지도 않다. 분명 감기나 몸살이 온 것 같지도 않은데 좀처럼 침대에서 일어 날 수가 없다.

고개를 들어 발쪽을 바라보니 내 몸이 커다란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친다. 내 몸이 가슴에서 발끝까지 딱딱한 껍질로 싸여있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팔과 발이 있던 자리에는 징그럽게 생긴 수 십 개의 집게발 같은 것이 계속 꼬물거리고 있다.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나 싶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이 상황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를 깨우려고 가족들은 연신 문을 두드리고, 직장에 늦지 않으려면 나는 빨리 일어나서 출근에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야한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이 상황은 어떻게 일어난 것이고 나는 어떻게 해야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카프카의 ‘변신’은 100여 년 전인 1915년에 프라하의 한 잡지 ‘디 바이센 블래터’에 실렸던 단편소설이다. 처음 읽어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 기괴한 소설은 실은 우리의 삶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읽을 때마다 불편해지는 감정을 누르기 힘들다.

물론 소설에서처럼 우리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딱정벌레가 되어 있더라는 말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말이다. SF 영화가 아닌 실제 현실에서 우리가 그런 괴물로 변할 수는 절대로 없을 테니 그 점은 안심해도 좋다. 더구나 우리가 자고 일어나서 그 징그러운 발들을 버둥거리면서 더듬이로 주변을 파악하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괜한 걱정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가 가족의 한 명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일정부분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또 여동생에게 파리유학을 약속했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 동안 가정에서 따뜻한 대접을 받아왔다. 소설의 말미에서 그 기대가 더 이상 충족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순간, “저 징그러운 벌레는 우리 오빠가 아니야”라는 말로 주인공은 집밖으로 버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벌레로 변할 리는 없지만 주변의 기대를 배반할 수는 있다. 술만 취하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와 나태에 빠진 무능한 남편, 그리고 게임에 함몰되어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는 아이들은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들에 대한 기존의 인내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면 이제 그들은 언제라도 내팽겨지고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아”라는 말로 합리화된다. 실제 그런 일은 주변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기대에 대해 가장 커다란 공통분모를 갖는 것은 아마도 정치일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언급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고 국민과 연결 지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의 저하로 그들에 대한 날선 비판이 일상이 된지 오래다. 이유가 무엇이든 정치인들이 하는 일은 국민들의 혈압을 올리는 것과, 그들에 대한 냉소를 부채질하는 것이 전부 다처럼 보인다. 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있지만 국민들은 그들만의 리그에 관심이 없다. 불안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이 무거운 국민들에게 정치인들이 벌이는 게임은 자신들을 위한 기득권 놀이에 불과할 뿐이다.

가구가 낡으면 버리는 이유는 그 가구로 인한 불편이 편리함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웠던 아들이요 오빠를 오늘 기꺼이 버리는 것은 이제 “저 벌레가 우리 오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의 근저에는 기대치의 미충족이라는 잔인한 셈법이 자리하고 있다.

기대치는 현재를 근거로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무망한데도 그들이 “내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산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나는 언제라도 딱정벌레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국민을 정말로 위하고 모신다는 말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계산하는 것이 먼저다. 그 것이 징그러운 벌레로 버려지지 않는 길이다.(smoon@gwangju.ac.kr)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