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독립취업 여성, 현장직무

경단녀, 독립취업 여성, 현장직무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전남인적자원개발위원회 선임위원>
 

경력단절, 경단녀. 들으면 마음에 은갈치 가시가 돋지 않는가?

지난 9월 27일 필자가 연구자로 참여한 일자리정책 발굴 토론회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일갈했다. “몰랐는데, 여기 와서 경단녀라는 말을 들으니 나 역시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확 드네요. 낙인이 찍히는 기분입니다.”

직장을 떠난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직장을 찾아보는 당사자인 여성의 심정은 어떠할까?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을 꾸려오다가 이제 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직장을 찾는 나에게 ‘경단녀’라는 낙인을 찍어대다니, 이게 뭐야, 내가 잘린 사람이야, 말이 섬뜩하잖아, 나는 경단녀가 아니지, 나는 ‘독립취업 여성’이야.

취업한 지 1년 되어 인정받고 지내는 40대 후반 여성의 사례를 소개한다. 놀랍게도 그 여성은 조선 블록 업체에서 천정 크레인을 운전한다. 전남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주최한 훈련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자로 선정되어, 지난 14일 전남인적자원개발위원회 회의에서 최우수상과 격려금을 받았다.

그 여성 노동자는 취업에 앞서 전남인적자원개발위원회의 ‘지역·산업맞춤형 인력양성사업’을 수행하는 직업전문학교에서 ‘조선 기자재 운송장비 실무과정’(지게차와 천정 크레인의 운전 등을 훈련)을 마친 후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훈련생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여성은 둘이었다. 훈련과정에 등록할 때까지 주저했으나 가족의 격려와 직업전문학교 훈련교사의 적절한 상담지도를 받고나서 용기를 냈다. 여성으로서 나이가 적지 않았고 기계를 다뤄볼 기회가 적었던지라, 이론공부와 실기공부가 힘들었다. 자격증만 취득하면 취직 보장한다는 훈련교사의 말을 믿고, 훈련시간이 끝난 후에도 반복하여 이론과 실기를 익혔다. 마침내 자격증을 취득했다.

훈련과정에 등록하기 전에는 친정어머니를 병구완할 목적으로 사직했다. 뜻하지 않게, 한 달 만에 기력을 회복했다. 기쁘기도 하면서 새롭게 직장을 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고민이 생겼다. 시내를 걷다가 조선 기자재 운송장비 실무과정을 소개하는 홍보물을 보자 마음이 동했다.

자격증 취득 후 직업전문학교에서 알선한 업체에 취업했으나 남성중심 상명하복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직했다. 다시 훈련교사와 상담하고 도움을 받아 지금 다니는 조선 블록업체에 취업했다. 현장직무 수행자는 모두 남성이었다. 그 여성은 홍일점 현장직무 수행자가 되었다. 가끔 집에서 미숫가루나 간식거리를 마련해서 남성 동료들과 나눠 먹었다. 남성 동료들은 누나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여성 노동자가 입사하면서 현장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실은 블록업체의 사장은 고민하다가 모험한다는 심정으로 40대 후반 여성을 천정 크레인 운전자로 채용했다고 한다. 이제 사장은 조선 기자재 운송장비 실무과정을 마치고 자격증 취득한 여성이 나오면, 더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숙련도도 높고, 이직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현장 남성 동료와 잘 어울리고, 나이 어린 동료들에게는 고충 상담자가 되어주니, 사장에게는 그 여성 노동자가 값진 보배일 거다. 필자는 시상식에 참여한 그 여성의 남편에게 덕담을 건넸다. “훌륭한 여보(女寶)를 두셨네요. 축하합니다.” 시상식장에서 그 여성은 경험담을 담담하게 말했다. 천정에서 일하는 크레인 운전자라서 지난 겨울철에는 동상으로 고생했고, 올해 여름에는 땡볕이 공장 천정을 덮치는 통에 더위도 먹었다. 중장년 여성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철판을 다루는 조선 블록업체의 천정 크레인 운전자 직무에 숙련된 그 여성의 얼굴은 100촉으로 빛나 보인다.

지역·산업맞춤형인력양성사업의 취지대로 훈련 시작부터 취업까지 노력해온 목포의 (재)전남인력개발원 한국직업전문학교와, 열린 마음으로 중장년 여성을 현장직무 노동자로 채용한 목포 삽진산단 ㈜태영기업에 늘 볕과 빛이 풍성하길 바란다.

여성의 마음을 헤집어대는 ‘경단녀’보다는 적합한 말이 나올 때까지 임시로 ‘독립취업 여성’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철판을 다루는 현장직무도 ‘독립취업 여성’이 충분히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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