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동학농민혁명, 한국 근대민족운동사에 큰 족적”

‘동아시아적 의미와 그 위상’ 주제 국제학술회의

한국·일본 등 국내·외 연구자들 공동 주제발표

20일 진도군 철마도서관에서 ‘진도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적 의미와 그 위상’ 주제로 국제학슬회의가 열렸다. 학술회의 전날(19일) 저녁 목포 신안비치에서 열린 ‘역사를 직시하는 한일 시민교류회’일본측 참석자들이 과거 일본군이 농민군에게 저지른 참상에 대해 사죄의 묵념을 하고있다./정유진 기자 jj@namdonews.com
20일 진도군 철마도서관에서 열린 동학농민혁명 국제학술회의에서 하라다케이이치, 이노우에카츠에 등 일본학자와 박맹수, 홍영기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계승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있다./정유진 기자
20일 전남 진도군 철마도서관에서 ‘진도 동학농민혁명의 동아시아적 의미와 그 위상’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는 진도 동학농민혁명의 의미와 세계사적 위상과 동학사상의 현대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일본 등 국내·외 연구자들의 주요 발표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한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일본 나라여자대학)

동학농민혁명은 일본에게 큰 책임이 있지만 최근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알려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진도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의 잔멸작전으로 무념의 눈물을 삼킨 곳이다. 이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근대 일본이 만들어온 역사의 위조를 묻고,본래의 역사의 자세를 되돌려, 세계적으로 보편적이며 인류사적인 역사 인식을 세워야 한다.

◇ 조경달 교수(차바대학)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에서만 있었던 민중운동으로 틀림없는 농민전쟁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일어난 농민전쟁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세계사적인 규정성을 지니고 있다.

◇박맹수 교수(원광대)

1995년 7월 25일, 일본 훗카이도대학에서 헌 신문지에 싸여 종이 상자에 넣어진 채로 나무 책장 위에 방치돼 있던 사람의 두개골 6구가 발견됐다. 그 중에는 동학군 지도자 두개골 1구도 포함돼 있었다. 바로 이 유골방치사건이 일본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거센 진상규명 요구에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 작업에 착수했다. 훗카이도 의학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곳곳에서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노우에카츠오 교수(훗카이도대학)

청일전쟁 중에 조선각지의 마을에서 일본군에 의해 토벌이 행해졌다. 일본공사관은 동학농민군지도부 서류 수집에 열심이었다. 왕복서류 혹은 정부의 관리, 대원군 등이 동학농민군 지도부와 연락한 서류가 있다고 추측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2차 동학농민전쟁에서 동학농민군의 역사사료는 지워 없애졌다.

◇조성환 교수(원광대)

동학이 추구한 근대가 서구적 근대의 무력 앞에서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지만, 오늘날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세월호사건으로 서구적 근대 문명의 한계를 절감한 동아시아는 다시 동학을 ‘modernization’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라타 케이이치 교수(교토 불교대학)

100년 전에 식민지 제국으로서 발족하고 본격적인 식민지화에 착수하였던 일본은 100년 후인 오늘날 탈식민지화의 최종단계에 있지는 않은가 생각한다.

◇박현옥 교수(목포대)

진도출신 동학지도자의 유골을 모티브로 한 정이춘자의 ‘피어라 꽃’작품 배경이 된 지역은 현대 동학 소설에 있어서 무엇을 표상하고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홍영기 교수(순천대)

전라도는 19세기 말 발생한 동학농민혁명과 그 뒤를 이어 일어난 의병항쟁의 주 무대였다. 두 사건은 한국의 근대민족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최혁 기자 kjchoi@namdonews.com


/정유진 기자 yjj@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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