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 다시 되새겨야

국민주권, 다시 되새겨야
<문정현 법무법인 바른길 대표 변호사>
 

최고권력을 향한 의혹제기와 이를 무마하기 위한 세력간의 다툼으로 세상이 뒤숭숭하다. 최고 권력서열이 어떻다느니,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누가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다느니, 그와 같은 의혹제기에 일부 세력은 최고권력을 향한 의혹제기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금도를 넘어선 것인 양 호들갑이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아야 누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인데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최고권력을 향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우리 사회의 초라하고 부끄러운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씁쓸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이와 같은 여러 의혹에 대응하는 일부 세력의 태도는 더더욱 안타깝다. 이를 단지 정략적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또 이를 은폐하여 의혹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구심만 더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최고권력이든 아니든 간에 국민 앞에 솔직하고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국민의 불편한 의혹제기에 권력은 성실하게 답해야 하는 것이 국민주권의 진정한 구현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찰스 1세는 1628년 하는 수 없이 국민과 의회의 권리를 보장하는 ‘권리청원’에 서명하기는 하였으나, 왕권신수설(왕의 권한은 하느님으로부터 수여받은 절대적 권력이라는 설)을 철저히 신봉한 나머지 10년이 넘도록 의회소집을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영국을 통치하였다. 그러다가 찰스 1세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의회를 소집하였다가 의회와의 마찰이 증폭되어 결국 내전을 치러야 했고, 의회파의 승리로 찰스 1세는 반역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그 당시 국왕은 입법부와 사법부의 상위에 있는 존재였으므로 왕을 재판하는 법정을 조직하는 것 자체가 이론상 모순이었다. 1649년 1월 20일 영국의회 의사당에서 국민의 대표들이 국왕에게 죄를 묻는 영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그 법정에서 찰스 1세는 재판장에게 이렇게 묻는다. ‘왕권은 이 나라에서 천년이 넘도록 세습되어 왔소. 그런 왕국의 국왕인 나를 이 자리에 불러온 재판관들은 어디서 부여받은 권리로 나를 재판하려는 것인지 먼저 설명해 보시오’라고. 이에 대해 재판장인 존 브레드쇼는 ‘영국 국왕이 책임져야 하는 영국 국민이 부여하는 권위에 따라 여기 있는 판사들이 재판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이로써 국민주권이 선언된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대명제가 비로소 실현된 것이다. 이와 같은 국민주권사상에 따라 우리 헌법도 제1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어떤 권력도 국민 위에 군림할 수 없고, 어떤 세력도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현실은 거꾸로인 것 같아 답답하다. 선거철만 되면 국민을 하늘처럼 섬기겠다고 깊숙이 머리숙여 진심인 양 호소하던 정치인들도, 모든 국민을 섬기는 공복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서하던 고위직 공무원들도 그들이 섬겨야 할 국민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국민을 하늘처럼 섬긴다는 것은 국민에게 진지하게 다가서서 그들과 눈을 맞추고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이 아닐까 ?

더더욱 답답하고 서글픈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이 그와 같은 의혹제기에 시간과 국력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의 위기고조에 적절하게 대응하여 평화로운 내일을 여는 것,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는 서민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위안과 위로가 되는 것이 국가의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 아닌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모든 이들이 주권자인 국민을 먼저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기를 충언해주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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