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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혁 남도일보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천고마비(天高馬肥), 추호(秋毫), 개헌(改憲) 그리고 한혈마(汗血馬)

천고마비(天高馬肥), 추호(秋毫), 개헌(改憲) 그리고 한혈마(汗血馬)

<최혁 남도일보 주필>
 

최혁 주필
 

가을에는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말이 즐겨 사용된다. 직역하면 ‘하늘은 높고 맑으며 말은 살쪄있다’는 것이다.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러나 내포돼 있는 뜻은 두려움이다. 변방에 살던 중국인들은 가을이 지나면 공포에 떨었다. 겨울이 되면 흉노족들이 어김없이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흉노족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풀을 먹여 포동하게 살찐 말을 타고 넘어 들어왔다. 사람을 해치고 곡식과 가축을 빼앗아 갔다.


천고마비라는 단어에는 날래고 힘센 말을 타고 쳐들어왔던, 흉노족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져 있다. 서정적 가을정취와는 거리가 멀다. 중국 송(宋)나라의 이강(李綱)이 쓴 <정강전신록(靖康傳信錄)>에는 ‘신은 가을이 깊어지고 말이 살찌면 오랑캐들이 다시 쳐들어와 이전의 맹약을 책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臣恐秋高馬肥, 虜必再至, 以責前約)라는 글이 있다. 흉노(匈奴)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염려하는 내용이다. 천고마비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가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시달리고 있다. 흉노 같은 사람들이 우리 마음을 할퀴고 있어서이다. 날랜 말은 권력이다. 권력이라는 말을 탄 이들은, 권력자의 측근들이다. 최순실과 그 주변사람들은 오랜 세월 정치인 박근혜 곁에서 야망을 키웠다(馬肥;실제로 최순실과 그 딸은 말을 키웠다). 주군(主君)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자(天高)노략질을 시작했다. 최순실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빌미삼아 측근들을 산하기관에 간부로 심고 전경련 사람들의 팔을 비틀었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최고 권력자의 측근이라는 사실은 최순실에게 전가의 보도를 안겨줬다. 그녀는 권력이라는 칼을 휘두르며 인사를 좌우했고 전경련의 돈도 800여억 원을 끌어다 썼다. 위에 있는 이강(李綱)의 글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권력자의 사랑이 깊어지고 신망이 커지면 측근들이 발호해 이전처럼 국정을 농단할 것이 두렵습니다’. 최순실 PC에 들어있는 청와대문건들은 그녀의 국정농단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깊은 가을과 관련이 있는 단어가 또 있다. 추호(秋毫)이다. 추호는 매우 가늘어진 짐승의 털을 일컫는다. 소(牛)의 털은 매우 가늘다. 가는 털이 늦은 가을이 되면 더 가늘어진다. 그래서 가늘어진 소의 털을 말할 때 추호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추호는 단호하게 어떤 것을 부정할 때 사용된다. ‘추호도 그런 사실이 없다’는 말은 털 한 올 만큼이라도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가을에 ‘추호’라는 말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청와대 사람들은 “최순실이가 전경련의 돈을 끌어다 쓴 것과 자신들과는 추호도 관계없다”고 말하고 있다. 최경희 이화여대 전 총장 역시 “말을 잘 타는 최순실의 딸에 대한 특혜입학 의혹은 추호도 사실이 아니다”며 버티다 결국 물러났다. 전경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거뒀다고 말하고 있다. 추호도 압력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거짓의 추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결국은 이 모든 의혹과 논란을 잠재울 ‘카드’가 불쑥 튀어나왔다. 개헌카드다. 권력주변 사람들은 여기서도 추호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개헌카드에는 진정성만 있다는 것이다. 사심은 추호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과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을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로 비유했다. 경제를 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난데없는 개헌필요 주장에 ‘최순실 개헌’이라고 폄훼하고 있다. 최순실 파문을 비롯한 여러 의혹들을 한방에 훅~보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개헌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사실 최순실 의혹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벌써부터 정치판은 개헌문제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셈법이 다른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난장판이 돼가고 있다. 그러고 보면 최순실이 또 한 번 나라를 들어 엎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말(馬)로 중국을 괴롭혔던 흉노가 한 무제가 수입해온 한혈마(汗血馬) 때문에 패망한 것은 아이러니다. 한무제는 빠르고 튼튼한 흉노족의 말들보다 더 날쌘 말이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생각하고 멀리 대완국에서 명마(名馬)인 한혈마를 들여왔다. 결국 한혈마를 탄 한나라의 기병들은 흉노족 기병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국민을 괴롭히는 농단(壟斷)과 부인(否認), 그리고 다른 곳으로 시선끌기가 난무하는 천고지마의 계절이다. 이 모든 것을 물리칠 수 있는 한혈마는 무엇일까? 국민들이 제정신을 차려 한혈마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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