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야(3)- 김성일, 이순신의 발탁이 잘못되었다고 상소하다

임진왜란 전야(3)- 김성일, 이순신의 발탁이 잘못되었다고 상소하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591년 11월 김성일·심희수 등이 축성 중지를 청하고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된 인사라고 상소하였다.

부제학 김성일 등이 차자(箚子 간단한 서식의 상소문)를 올려 시폐(時弊) 10조를 논하고 이어 또 다시 차자를 올렸다. 김성일이 모두 세 번 차자를 올리면서 조금도 꺼리거나 피하지 않았는데, 동료들은 대부분 기피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나 류성룡만은 편지를 보내 치하하였다.

당시에 왜란을 대비해서 성지(城池)를 수축하고 병정을 선발하자 영남의 사민(士民)들은 원망이 더욱 심하였다. 김성일은 본래 왜변을 염려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잘못된 계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비변사에서 장수를 선발하는데 이순신을 우선 발탁하니 김성일은 또 잘못된 정사(政事)라고 하였다. (후략) (선조수정실록 1591년 11월1일자)

상소의 요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축성을 중지하라는 것이고, 둘은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축성부터 살펴보자. 1591년 7월에 선조는 호남과 영남의 성읍을 수축하였다. 비변사가 왜적은 수전에 강하지만 육지에 오르면 불리하다는 것으로 오로지 육지의 방어에 힘쓰기를 청하니, 이에 호남·영남의 큰 읍성을 증축하고 수리하게 했다. 그런데 경상감사 김수는 더욱 힘을 다해 봉행하여 축성을 제일 많이 했다. (후략) (선조수정실록 1591년 7월1일자)

조정에서는 왜국의 침략에 대비하여 김수를 경상감사, 이광을 전라감사, 윤선각을 충청감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성을 쌓도록 했다.

가장 열심인 곳은 경상도였다. 그러나 태평세월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백성들은 안일한 생각에 젖어 노역을 꺼리고 원성들이 높았다. 경상감사 김수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김성일은 영남에서 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폐단을 논하였다. 이는 김성일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상당수 관리들이 김성일과 같은 의견이었다.

이러자 김수는 ‘성을 쌓는 역사에 대해 도내의 사대부들이 번거로운 폐단을 싫어한 나머지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저지되고 있다’고 장계를 올렸지만 갈등만 낳았다.

이토록 왜침 대비는 속도와 힘을 잃은 채 조선은 1592년 봄을 맞았다.

둘째 김성일은 이순신의 발탁은 잘못된 인사라고 상소하였다. 1591년 2월 13일에 이순신은 정읍현감에서 전라좌수사로 임명되었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7계단 뛰어넘은 파격 승진이었다. 이는 좌의정 겸 이조판서인 류성룡의 천거에 힘입었다.

그런데 사흘 뒤인 2월16일에 사간원은 이순신의 파격 승진을 문제 삼아 체차를 청했다.

“전라 좌수사 이순신은 (정읍)현감으로서 아직 (진도)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좌수사에 초수(招授 관직을 뛰어 넘어 제수하는 것)하시니 그것이 인재가 모자란 탓이긴 하지만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체차시키소서” 하니,

“이순신의 일이 그러한 것은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상규에 구애될 수 없다. 인재가 모자라 그렇게 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이면 충분히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고 답하였다. (선조실록 1591년 2월16일)

2월18일에도 사간원은 아무리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어떻게 현령을 좌수사에 승임시킬 수 있느냐며 체차를 청했다.

그러나 선조는 단호했다.

이렇게 이순신의 전라좌수사 임명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순신이 전라 좌수사로 임명된 지 9개월이 지나서 김성일은 상소를 올려 이순신의 발탁 인사를 다시 문제 삼은 것이다.

김성일의 상소를 읽은 선조는 매우 불쾌했다. 1592년 3월 3일에 특지로 김성일을 경상우병사로 임명했다. 비변사가 ‘김성일은 유신(儒臣)이라서 이러한 때에 변방 장수의 직임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아뢰었으나 선조는 윤허하지 않았다. (선조수정실록 1592년 3월3일)

그런데 의문 나는 점이 한 가지 있다. “김성일의 상소에 대하여 동료들은 대부분 기피하고 참여하지 않았으나 류성룡만은 편지를 보내 치하하였다”는 1591년 11월 1일자 선조수정실록의 기록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나? 이순신의 발탁을 재고하라는 김성일의 상소에 대하여 류성룡이 치하했다는 말인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으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