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루이 나폴레옹 3세

박근혜와 루이 나폴레옹 3세

<최혁 남도일보 주필>
 

역사학자 조한욱은 지난 2011년 펴낸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이라는 책에서 ‘박근혜의 몰락’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그는 ‘역사는 코미디로 반복한다’는 소제목으로 쓴 글에서 ‘아버지의 비극이 딸의 코미디로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고 갈파했다. 헌정을 파괴했지만 독재개발의 이익을 본 사람들과 그 시절에 대한 무비판적 향수에 젖은 사람들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떠받들어지고 그 딸이 유력한 대선주자가 되고 있는 것은 코미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가 유지하고 있는 애매모호함과 침묵이 자신의 무식을 감추기 위한 저급한 신비주의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정치철학이나 신념이 불투명한)박근혜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에서 부나방의 모습을 본다고도 적었다. 6년 전 그가 지적했던 박근혜의 무능과 주변사람들의 권력욕, 맹목성은 2016년 12월의 탄핵정국상황에 비춰보면 소름끼치도록 닮은꼴이다. 상황과 구도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는 앞에 소개한 <역사에 비친 우리의 초상>에서 박근혜가 유력정치인으로 부상한 이유와 ‘뭔가 대단한 인물처럼 보이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딸은 그(박정희 전 대통령) 후광을 업고 대선 주자 중 선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한 가지는 마땅히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야할 상황에서 침묵이라는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함으로써 신비적인 이미지도 가꾸고, 행여 말실수로 받게 될지도 모를 비판을 차단한다. 고도의 전략일지 모르지만 책임 있는 정치가가 보일 자세는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이 의결된 지금의 상황에서 보면 그녀의 ‘침묵’은 ‘고도의 전략’이 아니라 ‘개념 없음’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요승(妖僧)이 내뱉은 단순한 말 한마디를 놓고 세상 사람들이 온갖 해석을 덧붙여 ‘천지개벽’의 의미를 끌어내 듯 그녀가 피격당한 뒤 무심코 내뱉은 “대전은요?”그 한마디는 민심을 흔들어 선거판을 요동치게 했다. 착각이, 내공이 얕은 그녀를 절대자로 만들었다. 우리 스스로가 몽매한 ‘박근혜교 사이비 신도’가 된 것이다.

조한욱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가문과 박정희 가문의 유사성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실을 밝히고 있다. 나폴레옹은 1799년에 쿠데타를 일으켜 제1통령에 취임했다. 5년 뒤 황제가 돼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 황제로 있었다.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1848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옹 집권 당시의 영광을 그리워하면서 보잘 것 없는 루이 나폴레옹에게 몰표를 던졌다.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쿠데타를 일으킨 뒤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10년으로 연장했다. 그리고 다음해 나폴레옹 3세 황제로 등극해 1870년까지 통치했다. 그가 실시했던 국민투표는 여러 후보 중에서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아니었다. 정해진 후보에게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선거였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독재였다. 루이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킨 뒤 계엄령을 선포하고 지지자들을 모아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우리의 과거 정치사와 매우 흡사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던 유신헌법이고 국민투표다. 한국의 어용헌법학자들은 프랑스 루이 나폴레옹의 장기집권 과정을 그대로 차용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장기독재의 길을 열어줬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렇지만 많은 국민들이 그의 지도아래 나라의 경제가 일어섰고 가난을 벗어나게 됐다고 믿고 있다. 그런 믿음과 향수가 그의 딸을 대통령이 되게 했다.

나폴레옹의 후광을 입어 황제 자리에 오른 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각종 전쟁에 뛰어 들게 했다. 나폴레옹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혀야 했기 때문이다. 크리미아전쟁을 비롯 이탈리아 독립전쟁, 멕시코 전쟁, 보불전쟁을 치렀고 세네갈과 인도차이나에도 군대를 보내 영토를 넓혔다. 심지어 조선에까지 군대를 보내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냈다. 1866년 프랑스 군대를 보내 강화도를 점령토록 한 황제가 바로 루이 나폴레옹 3세다.

그러고 보면 루이 나폴레옹 3세는 1866년부터 2016년까지 150년 동안 조선·한국에 질긴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조선 개국에 있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또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있어서도 교과서가 됐다. 역사의 연쇄작용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이 되게끔 했고 결국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무대를 통해 보는 역사의 연관성과 반복이 새삼 흥미롭다. 불행하게도 ‘코미디 같은 역사’여서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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