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롭다

법이 무너지면 나라가 위태롭다

<최혁 남도일보 주필>
 

조선이 망한 것은 상식(常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탐관오리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죽은 이들에게도 세금을 부과(白骨徵布)했다. 어린 사내아이에게도 군포를 내라고(黃口添丁) 백성들을 윽박질렀다. 상식은 순리다. 따라서 상식이 무너졌다는 것은 순리(順理)가 아닌 역리(逆理)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역리는 상식을 깔아뭉개는 패악 질이나 다름없다. 패악 질 권력은 백성들을 후려쳤다. 민심은 등을 돌렸다. 민심이 떠난 조선. 결국 조선은 망했다.

그러나 법을 근간으로 해 세워지고 운영되는 현대국가는 좀 다르다. 현대사회는 너무도 많은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때문에 상식보다는 법을 근간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법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즉 필요에 따라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고무줄 법’이 된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법에 대한 불신은 결국 법을 운용하는 사회상층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민중들은 법외의 다른 방법으로 저항하게 된다. 대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촛불정국에 ‘같은 법’이 창이 되고 방패가 돼 춤추고 있다. 모순(矛盾). 矛는 창을 말한다. 盾은 방패다. 초나라 때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팔고 있는 장사꾼에서 비롯된 용어다. 박근혜대통령을 탄핵하려는 국회와 대통령 대리인단들 간의 법적 대결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최순실을 벌주려는 검찰에 맞서 최씨 변호인들의 감싸기도 막이 올랐다. 탄핵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려있기도 하다.

곳곳에서 법리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나라가 혼란해지니 법 다루는 곳이 북새통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나라의 법이 ‘제대로 된 법’이고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사람들’이냐는 것이다. 기자는 진경준 전 검사장의 1심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본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제3자 뇌물수수 등 혐의로 진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렇지만 넥슨주식과 관련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는 무죄를 내렸다.

법원은 처남의 청소용역업체에 100억 원대 용역을 몰아준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김정주 NXC 대표로부터 받은 주식매입대금 9억5천만원은 뇌물에 해당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뇌물공여 혐의의 김정주 NXC대표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의 논리는 해괴했다. ‘두 사람이 매우 매우 가까운 친구사이이기 때문에 돈을 주고받은 것은 죄가 아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지음’(知音)이라는 단어를 들이댔다. 지음은 ‘마음이 통하는 아주 가까운 친구’를 의미한다. 재판부는 또 “김 대표가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돈이 많은 사람이니까 우정을 위해 몇 억 정도는 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9억 여원이 ‘대가없는 우정의 표현’이었다는 것이다. 허위 재산 신고 혐의에 대해서도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은 맞는데 적극적으로 조작한 것은 아니다’ 며 무죄판단을 내렸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게 법이냐?”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어떤 변호사들은 “재벌 오너가 검사 친구에게 수억원을 주었는데 가진 재산에 비해서는 큰돈이 아니니까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냐? 황당한 판결이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3만 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받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고 ‘협박’받고 있는 가운데 나온 법원의 ‘진 전 검사장 뇌물수수 혐의 무죄판결’은 법의 가치와 위엄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게 만들고 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지난 13일 벌어진 새누리당 이진곤 윤리위원장의 전격사퇴도 ‘법이 어떻게 생겼든 법을 우리에게 유리한대로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오만과 패권주의가 빚어낸 일이다. 이 위원장과 정운천의원등 비박계 윤리위원 6명은 이날 당 지도부가 친박 인사들을 윤리위원으로 충원하자 사퇴를 선언했다. 이 정현 전 대표 등 지도부가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당의 징계를 입맛에 맞게 만들어 내려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최순실 일당은 청와대를 제집처럼 마음껏 드나들었지만 국정조사 특위소속 국회의원들은 청와대 내에서 현장조사를 벌이지 못했다. 청와대는 경호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법과 원칙을 우습게 여겼던 이들이 진실은폐를 위해 법을 내세우고 있다. 박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은 법을 소도(蘇塗:고대사회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 죄인들이 이곳으로 피해 있으면 처벌할 수 없었다)로 삼고 있다. 변호인들의 해괴한 논리에 법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면 정말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