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귀가한 이유는”…“피해자에게 편지 쓰세요”

중·고생 7명 ‘또래 아이’ 폭행 사건 배심원단 참여

가족과 함께 여행가기·금연클리닉 참여 등 과제 제안

재판부, 의견 반영해 아버지와 교환일기 쓰기 등 명령

■ 임소연 기자의 청소년참여법정 참관기
 

18일 오후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가정법원 301호 법정에서 ‘청소년 참여법정’이 열렸다.
청소년참여법정은 배심원 자격으로 참석한 7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또래 눈높이에서 심리를 거쳐 적절한 부과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한다./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A(17)군은 지난해 6월 늦은 밤 길을 지나가던 B(16)군과 시비가 붙었다. 고교 2학년인 A군은 B군의 뺨을 1차례 때리게 됐고, 난생 처음 경찰 수사를 받고 재판으로 넘겨졌다.

18일 오후 3시 30분께 광주 서구 치평동 광주가정법원 301호. 배심원 진행자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중인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자 A군은 곧바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진행자 질문에 말을 잇지 못할만큼 그의 눈에서는 많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광주가정법원은 이날 A군의 사건을 ‘청소년 참여법정’으로 진행했다. 청소년참여법정은 배심원 자격으로 참석한 7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또래 눈높이에서 심리를 거쳐 적절한 부과 과제를 선정해 판사에게 건의하는 역할을 맡는다.

범행을 저지른 청소년이 자신에게 부과된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면 법원은 해당 사건의 심리를 열지 않고 사건을 종결(심리불개시결정)하게 된다. 과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재판을 계속한다.

참여인단 학생들은 전남도교육청에서 지난해 10월 중3~고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21명의 참여인단을 뽑아 5~9명의 청소년을 참여법정에 참여시켰다. 광주가정법원은 비행소년의 재판에 또래 학생들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2015년 제도를 도입했다.

이날 광주 보문고 국윤배 교사의 진행으로 심리가 이루어졌다. 청소년 참여인단은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A군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이날 7명의 청소년참여인단은 A군에게 ‘과거 학교 폭력을 저지른 적이 있는지’, ‘집에 늦게 들어가는 원인과 피해자를 어떻게 폭행하게 됐는지’ 등 범죄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었다.‘잘못을 저지른 후 반성을 하고 있는지’ 등도 질문했다.

이에 A군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길을 지나가고 있던 또래 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네’ 등을 말해 시비가 붙게됐다”며 “사건이후 술을 끊고 항상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싶다.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A군의 아버지는 “엄마가 많이 아프고 저는 현장 일이 많다는 이유로 부모 역할을 할 시간이 없었다. 너무 미안하다. 학교를 1주일씩 빠지며, 서울에서 투병 중인 엄마를 격주로 간병한 아이다. 심성은 착하다. 사건 이후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심문이 끝난 후 청소년 참여인단은 어떤 과제를 부과할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피해자에게 편지쓰기 ▲금연클리닉 참여 ▲가족과 함께 여행가기 ▲진로탐색 프로그램 참여 등 판사에게 건의할 4가지 과제를 선정했다.

심리를 맡은 광주가정법원 박현수 판사는 참여인단의 의견을 토대로 ▲아버지와 교환 일기 쓰기 20시간 ▲피해자에게 편지쓰기 2시간 ▲금연 클리닉 6시간 등을 오는 2월24일까지 이행 할 것을 A군에게 명령했다.

박 판사는 “청소년 참여법정은 또래의 공감을 일으키고 청소년 스스로 부과과제를 수행, 자아존중감을 회복하고 비행성을 개선하려는데 목적이 있다”며 “이런 아이들은 부모님이 옆에서 잡아주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회복될 수 있는 아이인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이런 아이들을 품을 수 있는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회복센터를 신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청소년 참여인단으로 참여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실제로 이런 재판에 참여하게되서 좋은 기회였고, 범행을 저지른 학생을 위해서 어떤 것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며 “청소년 참여인단이 선정한 과제가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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