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추억

<허강숙 전남도 여성가족정책관>
 

어릴 적 설날은 추웠다. 정말 추웠다. 추억 속의 설날은 꽁꽁 얼어붙은 손을 부비면서도 세뱃돈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객지에서 오시는 친지 어르신들을 찾아보곤 하였다. 아니 어쩌면 설날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세뱃돈에 대한 예산과 결산을 잡아놓았는지도 모른다. 이번 설날 나는 세뱃돈을 얼마를 탈까? 그 돈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때로는 그러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어 계산과 달리 세뱃돈을 적게 주거나 아예 주지 않은 친지에 대한 서운함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형제들과 세뱃돈 비교를 하는 것도 설 연휴를 보내는 통과의례였다. 그러저러한 설날 이야기는 앨범 속 흑백사진에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살기 좋아졌다는 요즘에는 덜하지만 예전에는 설날에 설빔을 입었다. 1년에 한 차례 설날에라도 새 옷을 입혀보고자 하는 부모의 심정이었을까? 그나마 큰 아들, 큰 딸은 설빔이라도 입지만 둘째나 셋째라면 언니나 오빠에게 물려 입는 것이 설빔이었다.

이제는 설빔은 고사하고 한복을 입은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설날이라고 예전처럼 폭죽을 터뜨리거나 윷놀이나 연날리기, 제기차기 놀이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저 모이면 애나 어른이나 스마트폰 들여다보는 것이 일이다. 그것도 아니면 나란히 앉아 TV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른들은 화투를 치기도 하고 아이들은 게임을 하기도 하고.

설날이라고 해야 예전의 정적인 측면은 사라지고 오로지 형식적인 인사치레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성묘도 가고 세배도 가지만 마음속으로는 연휴 기간 동안 외국여행이나 갔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추억 속에 사는 것은 정겹다. 되살려낼 추억도 없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그나마 되새김질할 추억거리라도 있는 우리들이 낫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고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공부 안 해도 되고 야단도 안맞아도 되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서 설날 아침이면 꼬박꼬박 두 그릇 씩 떡국을 먹기도 하였다. 그런데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먹는다면 이제는 더 이상 떡국을 안 먹고 싶다.

요즘은 설날 떡국에 쇠고기나 닭고기를 넣는데 원래는 꿩고기를 넣었다고 한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다. 떡국에 넣는 꿩고기를 구하기 힘들어 쉽게 구할 수 있는 닭고기를 넣게 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런데 조류독감 파동으로 닭이며 오리조차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이번 설에는 닭 대신 무엇을 넣어야 할까?

정유년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지 7주갑, 즉 420년이 되는 해이다. 임진왜란이 부산에서 시작하여 의주까지 왜군의 말발굽이 짓밟은 전쟁이었다면 정유재란은 대부분 호남에서만 왜군의 말발굽이 짓밟은 전쟁이었다. 다시 이야기하면 정유재란은 일본과 호남의 전쟁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닭의 해, 그 중에서도 정유년을 맞이하여 우리 호남에서라도 정유재란을 극복한 호남의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번 설날에는 그래서 다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라의 정치며 역사며 이야기해보고 걱정하고 미래를 그려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호남인의 자긍심이요, 위기 때마다 국난을 극복한 호남인의 의무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위기상황이다. 정치적인 위기는 경제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정치적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야 우리의 삶이 편해진다. 우리의 미래가 그려진다. 명절에 친지들이나 친구들이 모여 추억 속에 잠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촛불집회에서 보여주었던 민심을 설 연휴 기간에도 나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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