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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특집>세뱃돈 변천사
김명식 기자  |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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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24  13: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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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변천사

500원 동전 나오면서 급상승

경제상황·화폐 변화상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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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금액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을까. 세뱃돈은 그동안 물가상승과 경제상황, 화폐의 변화상을 반영하며 꾸준히 올랐다.

세뱃돈은 원래 잡귀를 쫓고 부를 부른다는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주는 중국의 풍습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세뱃돈을 주는 문화는 1960년대 들어서 처음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덕담이나 떡국 한 그릇으로 끝났고, 1950년대는 전후 복구로 먹고 살기 급해 세뱃돈을 주고받기 어려웠다.

1960년대 들어서며 화폐경제가 정착되면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세뱃돈은 10원이었다. 당시 1원이면 왕사탕이 5개였으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만원 정도 되는 셈이다. 70년대의 경우 취학 전 어린이는 50원, 국민학생(현 초등학생)의 경우 100원 수준이었다. 짜장면이 30원 하던 시절로 지금으로 치면 각각 8천300원, 1만7천원 정도다.

세뱃돈이 급격하게 오른 것은 1982년들어서다. 지폐였던 500원 짜리가 동전으로 바뀌면서 봉투에 담아 세뱃돈으로 주기 부적절해졌다. 이때부터 세뱃돈의 최소단위가 1천원으로 급상승했다. 결혼 축의금, 부조금 등도 덩달아 오른 시기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치른 80년대 중반에는 물가가 급등하면서 1천원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었다. 별 수 없이 세뱃돈도 5천원대에 진입하게 된다.

물가 인상은 세뱃돈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1만원권이 표준 세뱃돈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1997년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1998년 설에는 일부 가정에서 1천원짜리 세뱃돈이 재등장 하는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2009년에 5만원권이 생기면서 세뱃돈으로 5만원권을 챙겨주는 집들도 생겨났지만, 아직까지는 보편적이라 보긴 어렵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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