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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동학유적지-<95. 구례의 동학농민혁명>세 컸던 구례농민군 김개남 농민군 적극 지원
최혁  |  hchoi@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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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08  16: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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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구례의 동학농민혁명>
세 컸던 구례농민군 김개남 농민군 적극 지원
말·총·화약 등 남원성·교룡산성 농민군에게 물자 조달
전북농민군 식량으로 쌀 300섬 화엄사에 쌓아두기도
구례농민군 백산대회 참가 ‘12조 군율’ 따라 기강 유지

 

구례현지도
구례현지도(求禮縣地圖, 1872년 지방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구례현은 지금의 전남 구례읍, 간전면, 광의면, 마산면, 문척면, 용방면 남쪽과 토지면을 포함하는 일대였다. 읍치는 구례읍 봉동리 일대에 위치했다. 동쪽으로는 장엄한 지리산이 자리 잡고 섬진강이 서남쪽을 돌아 구례를 거쳐 나간다.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계곡이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다.

구례는 다른 지역보다 동학이 늦게 전파됐지만 동학도는 급속히 증가했다. 곡성의 기봉진에 의해 1892년 구례에서도 허탁과 임양순, 우공정 등이 동학을 받아들였다. 1893년 음력 정월에는 전봉준이 작성한 창의문을 각 군의 아문에 게시하는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다. 구례에서는 남원 출신의 유태홍이 곡성의 김재홍 등과 함께 각 군의 아문에 창의문을 붙였다.

그 후 구례의 임춘봉(林春奉)은 농민군을 이끌고 백산대회에 참여했다. 농민군들의 기율은 <12개조 군율>에 따라 상당히 엄격했다. 이들은 유교적 윤리에 기초한 무혈혁명을 지향했다. 농민군의 활동이 두드러지자 수령과 향리뿐만 아니라 토착양반들이 이들을 가장 두려워했다.

구례에서는 곧 동오군(東五軍)을 편성해 강진 병영으로 파견했다. 음력 5월 이후 집강소 활동기에 들어서자 구례 역시 농민군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동학교인들이 크게 늘었다. 구례의 동학농민군이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자 농민들은 생업에 전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구례의 양반 유제양(柳濟陽)도 농민군을 피해 깊은 골짜기에 판잣집을 짓고 살아야 했다. 그는 당초 운조루(雲鳥樓)에서 살고 있었다. 운조루는 현재의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오미리(五美里)에 금환락지(金環落地)라고 불리는 명당자리에 있었던 전통 누정이었다.

운조루라는 이름은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 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운조루는 1천400평의 대지에 99칸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양반 가옥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호이다.

반면 농민군들은 스스로를 접장(接長)이나 포사(砲士)라고 부르면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러 다녔다. 구례 지역은 전라좌도 농민군의 군수물자를 공급하고 비축하는 역할을 했다. 구례에서는 주로 남원의 농민군들이 군수물자를 징발했다. 농민군은 말과 철환, 총, 화약 등을 징발했다.

김개남은 8월 25일 남원으로 들어와 남원성과 교룡산성을 무력의 거점으로 삼고 무력항쟁을 준비해 나갔다. 남원에서 전라좌도의 농민군을 통솔했던 김개남은 구례를 군수물자의 보관 기지로 이용했다. 농민군의 2차 봉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조달하기 위해 남원의 산동방과 구례에서 토지 1결당 쌀 7말을 거두어들였다. 거두어들인 쌀 300섬을 화엄사에 보관한 후 조카에게 관리토록 했다.
 

화엄사
김개남 부대의 군수물자 저장소로 쓰였던 화엄사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 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한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와 20여 동의 건물이 있다.

집강소 활동기에 엄세영(嚴世永)은 염찰사(廉察使)로 파견됐다. 그는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며 살폈으나 농민군들은 그를 깔보고 함부로 했다. 그가 구례에 도착했을 때 고흥출신 유복만이 지휘하는 농민군들도 구례를 지나는 중이었다. 농민군들은 엄세영에게 거짓으로 귀화하겠다고 말했다.

엄세영은 너무 기뻐서 구례현의 공금 1천량을 전용해 그들의 여비로 보태줬다. 그리고 농민군이 모두 평정됐다는 문서를 발송했다. 그러나 농민군의 활동은 더욱 거세졌다. 그 후 염찰사로 여러 군현을 순행하던 엄세영은 순천의 선암사에서 농상공부 대신(農商工部大臣)에 임명돼 서울로 올라갔다.
 

문승이 선생
문승이 선생
구례향토문화연구회 문승이 회장은 전남대 교수와 구례문화원장을 역임했다. 선생은 교단을 나온 뒤 남도의 전통문화 보존과 동학 연구에 헌신했다.
광의면에서 바라 본 지리산
광의면에서 바라 본 지리산
섬진강을 경계로 동북쪽은 광의면, 남서쪽은 용방면이 위치한다. 노고단에서 이어진 줄기가 남서쪽으로 이어져 맥을 이루고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최혁 기자 kjhyuckchoi@hanmail.net


/정유진 기자 jin1@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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