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우체국 집배원이자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 위원장인 최승묵(45)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집배원 17년차인 최씨는 '공무원은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통념과 거리가 먼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해 우편물을 분리한 뒤 오전 9시에 배달을 시작한다.

최씨가 평균 하루에 배달할 물량은 우편물 1500여통, 등기 150통, 택배 50통에 달한다. 매일 같이 이 물량을 소화해야 하다 보니 휴식은커녕 점심도 거르기 일쑤다. 야근도 매일같이 이어진다. 오후 5시 무렵 배송 업무를 마치면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가 전산작업을 해야한다. 다음날 업무 준비까지 마치면 오후 9시가 넘어야 퇴근길에 나선다. 최씨는 "자기가 맡은 구역은 자기가 그날 책임져야 한다. 초과근무는 당연시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1년 동안 집배원 9명 사망…75.6% 근골격계 질환 호소

최씨처럼 전국 1만6000여명의 집배원들은 장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7월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전국 집배원 초과근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 월 평균 노동시간 240시간,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이었다. 일반 노동자보다 매주 12시간, 매년 621시간씩 더 일하는 셈이다.

게다가 토요근무까지 재개되면서 업무 부담은 더욱 가중됐다. 우정사업본부는 2014년에 토요근무를 폐지했다. 그러나 2015년 8월 1년여 만에 부활했다. '경영 적자'가 이유였다. 토요근무제 도입 이후 월평균 초과 노동시간은 76.7시간으로 도입 전보다 약 6시간이 늘어났다.

강도 높은 노동 탓에 집배원들의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최근 1년간 근무 중 돌연사한 집배원만 7명이고 교통사고 사망자까지 더하면 9명이다.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에도 어김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배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도 훨씬 높다.

올들어서만 해도 벌써 3명의 집배원이 사망했다. 지난달 18일엔 경북에서 34세 젊은 집배원이 배달 중 1t 트럭에 부딪혀 병원에 옮겨졌지만 이틀 만에 숨을 거뒀다. 그가 사고를 당한 날은 배송 물량이 급격히 집중되는 설날 특별소통기가 시작된 주였다.

같은 달 31일 파주에서 54세 집배원이 근무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최근에도 또 한 명의 집배원이 생을 마감했다. 지난 6일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소속 집배원 조모(45)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조씨는 전날인 일요일에도 출근해 우편물 분류업무를 하고 오후 10시30분께 퇴근했다.

집배노조는 조씨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같은 팀 동료가 일을 그만둔 데다 이번 설 연휴 동안 또 다른 동료가 다리를 다쳐 출근을 하지 못하자 조씨가 떠안은 업무량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된 새신랑이었으나 출·퇴근길이 멀어 우체국 인근 원룸에서 홀로 생활한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많은 집배원들이 강도 높은 업무와 열악한 업무 환경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집배노조에 따르면 집배원의 75.6%가 근골격계 질환이 있고 50%가 뇌심혈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량에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없어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티는 경우가 대다수다.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최씨도 "끼니를 거르거나 10분 내외로 허겁지겁 먹는 경우가 많은데 병원 갈 시간은 있겠느냐"며 "월차를 쓰면 다른 동료가 내 업무를 떠맡아야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니 증상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특히 심혈계질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집배원 죽이는 신도시 정책…인력충원 시급

집배원들은 반복되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서 인력 충원만이 해답이라고 호소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 탓에 매달 20시간가량 무료노동으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정사업본부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방관하고 있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허소연 집배노조 선전국장은 "본부는 집배원들의 죽음을 단순히 질병사로 치부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한다. '과도하게 일찍 출근하지 말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침만 내리는 등 사태를 방관하고 있어 집배원들을 더욱 골병들게 하고 있다"면서 "장시간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소한 23%의 인력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허 국장은 "시간외근무 수당도 예산절감이나 예산부족 이유로 실제 근무시간보다 더 적게 주고 있다. 쏟아지는 물량으로 인해 배달이 밀리면 손해는 곧 집배원 책임이기에 초과근무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오히려 본부는 집배원의 매년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이를 인력감축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도시에서 근무하는 집배원들의 업무량은 살인적이다. 최근에 사망한 조씨가 근무했던 아산에도 1만여세대 입주가 예정된 신도시였다. 세대가 급증하면서 물량폭주가 충분히 예상된 상황이었으나 인력충원은 없었고 결국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 최씨가 근무하는 시흥시도 목감, 배곧 등 신도시 4개가 동시 조성되고 있어 우편물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최씨는 "자고 일어나면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는데 인력은 전혀 보충되지 않고 있다. 늘어나는 세대만큼 그 구역을 맡는 집배원의 업무량은 늘어나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 주말까지 반납해야 한다"면서 "제시간에 배달이 되지 않았다고 민원이 들어오게 되면 관리자로부터 징계를 받거나 인사고과에 반영되니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달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관리자들이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다보니 현장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개선사항을 요구해도 현장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으니 지금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고 비판했다.

허 국장은 "외국과 비교해도 국내 집배원 업무량이 굉장히 많다"며 "일본은 집배원 1명의 담당인구가 660명이지만 한국은 2800명에 달한다"며 "인력충원은 물론 토요근무 폐지와 집배원에게 우편사업의 적자를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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