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끝만큼’도 생각 없다

‘털끝만큼’도 생각 없다

<박상신 칼럼니스트>
 

“만약 이 소녀가 나의 딸이라면? 만약 이 소녀가 나의 어머니라면? 만약 이 소녀가 나 자신이라면? 나에게는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없다. 나는 잊지 않는다.”

“일본 사람으로서 과거 전쟁범죄를 은폐하고 있는 아베 정권의 대응을 사과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싸워 나가겠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배우고 미래를 연결하고 싶다. 당신들의 슬픔은 우리들의 슬픔.”

얼마 전, 부산 소녀상을 방문한 일본 여성들이 남기고 간 사과 편지의 내용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쓴 편지에는 “과거 일본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양심선언으로 보이며, 과거를 반성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그래서 아직도 모든 잘못을 은폐하려는 아베 정권에게 정의는 살아있으며 끝까지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슬프고도 간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꽃다운 젊은 나이,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끌려나간 소녀들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른 채 일본군에게 반인륜적 모진 수모를 당해야만 했다. 만약 이 소녀가 일본인들의 딸, 어머니, 자신이라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되묻고 싶다.

지난 3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민진당 오가와 준야 의원의 대정부 질의가 있었다. 그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느냐”고 아베 신조 총리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한마디로 “사과편지를 보낼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였다. 아베 총리의 잘못된 역사관을 볼 수 있는 언행이다. 일국을 이끄는 지도자의 실로 놀라운 망언이다. 한편 독일을 이끄는 메르겔 총리의 반나치정책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의 인종청소란 명분을 빌미로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많은 곳에서 수백만을 처참히 참살했다. 그 참혹한 진실은 묻힐 뻔했지만 1961년 사건의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법정 증언으로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 후, 1970년 독일 정부의 수반인 빌리크란트 독일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무릎을 꿇으며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들의 사죄는 시작에 불과했다. 독일정부의 수반들은 지난 나치 정부의 과거사를 솔직히 사죄했으며 현 메르겔 총리 또한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과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게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재차 용서를 구했다. 2015년 러시아를 방문해서도 무릎을 꿇으며 전쟁 피해자와 희생자들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이어나갔다. 일본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가해자들이다. 하지만 과거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이 뽑은 박근혜 정부의 과거사는 어떤가. 지난해 12월 일본 아베 정권과 체결한 위안부 합의는 왜 비밀이 되어야만 했는가. 그리고 왜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은 묵살한 것인가. 되묻고 싶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 국민에게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는가이다. “털끝만큼도 사과편지를 보낼 수 없다”란 아베 총리의 후안무치한 행동에 응수도 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정부로 전락했다.

박근혜정부와 협상의 주체인 외교부는 ‘만약 이 소녀가…’란 편지를 이해한다면 지금이라도 위안부 합의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박근혜정부의 권력은 국민에게 양도받은 박근혜,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이는 위임받은 것이며, 권력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주인 중에는 위안부 할머니도 있다. 그들의 바람은 큰 것이 아니다. 단지 “일본이 저지른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를 받자는 것이다.”

돈 몇 푼으로 그들의 뼈아픈 과거사를 입막음하려는 술책은 없어야 한다. 이 순간에도 ‘털끝만큼’이란 아베 총리의 말 한마디가 평생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을 피멍으로 물들이고도 모자라 대못질을 한 격이다. 광복이 된지 70여 년이 흘렀다. 하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직도 일제강점기 슬프디슬픈 과거의 기억공간에 갇혀 있다.

시간의 토양 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듯, 계절을 역행할 수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오백 년 전, 임진왜란과 36년 일제 강점기의 역사가 어떻게 왔는지를….

그래서인지 우리는 아베의 ‘털끝만큼’이란 단어를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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