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원의 친일매국노 선정비

광주공원의 친일매국노 선정비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1. 1월 19일 아침에 광주공원에 있는 도원수 권율장군 창의비를 찾았다. 2년 만에 갔는데 주변이 사뭇 달라져 있었다. 권율장군 창의비 앞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직동문화재보존시민모임’이 걸은 현수막에는 “이곳 선정비에는 권율 장군의 창의비, 어사 조헌, 서헌거사 의적비와 일제강점기 친일매국노인 윤웅렬과 이근호의 선정비가 있습니다. 매국노에 대한 울분으로 비석을 훼손하는 것은 또 다른 야만적 행위입니다. 이들의 친일행각을 알리고 이를 반면교사하는 역사교훈의 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단죄비 설치 등으로 후세에 알리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도록 훼손을 막아 주십시오. 비군 훼손에 대하여는 법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아니, 친일매국노 윤웅렬과 이근호 선정비가 있다니. 그리고 보니 ‘도원수 충장공 권율 창의비’ 바로 앞에 ‘관찰사 윤웅렬 선정비’와 ‘관찰사 이근호 선정비’가 나란히 있다.

그런데 관찰사 윤웅렬 선정비는 아랫부분이 금이 가 있고, 관찰사 이근호 선정비는 이름 부분에 분필 가루 같은 하얀색 물질이 묻어 있다.

#2. 관찰사 윤웅렬 선정비 앞에는 광주광역시 푸른도시사업소장의 ‘광주공원 비군(碑群)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선정비란 관찰사와 부사 등 고을의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 이룩한 공적이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비로써 우리나라의 어느 고장을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중략) 이 비석군은 광주시내 여러 곳에 흩어진 비를 1957년에 광주공원 입구에 옮겼다가 1965년에 현재의 위치에 27기를 조성하였다. 선정비 중 윤웅렬·이근호는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년 5월 31일~2009년 11월 30일까지 활동)에서 친일인사로 선정된 인물입니다.

이들 친일인사에 대한 선정비 존치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으나, 철거나 단죄비 설치 등 방안을 논의 중에 있으므로 결정시까지 본 안내문을 존치할 예정입니다.”

#3.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2015년 7월에 민족 문제연구소 광주지부와 전남대학교 학생독립운동연구소 김홍길 교수팀은 광주공원 사적비군(群)을 전수 조사한 결과 친일파 윤웅렬과 이근호 선정비를 찾아냈고 단죄비를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광복회 광주전남지부도 친일파 윤웅렬과 이근호 선정비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윤웅렬(1840~1911)은 1896년 8월 5일에 초대 전라남도 관찰사에 임명되었고 제4대 관찰사도 하였으며, 이근호(1860~1923)는 제5대 관찰사(1902년 2월 28일~1903년 9월 23일)를 하였다.

윤웅렬 선정비는 초대관찰사를 한 이후인 1898년 2월에, 이근호 선정비는 제5대 관찰사 재직 중인 1903년 5월에 세워졌는데, 윤웅렬과 이근호는 1910년 한일합병에 대한 공로로 남작 작위와 2만5천원의 은사공채를 받아서 친일 반민족행위자 1천6명 중에 포함되어 있다.

#4. 그런데 윤웅렬과 이근호의 친일은 눈여겨볼만하다. 윤웅렬은 선조 때 재상 윤두수의 집안으로 서얼이었지만 1856년에 무과 급제하여 승승장구했다. 그는 신식군대인 별기군 창설의 주역이었고,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형조판서였으나 3일천하로 끝나자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어 1894년까지 지냈다. 대한제국 수립 후 법부대신, 군부대신 등을 거쳤다. 장남 윤치호 역시 변절한 친일파였고, 4대 대통령 윤보선은 조카 윤치소의 아들이다.

이근호는 1878년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남도 관찰사를 거쳐 1906년 육군참모장을 지냈다. 동생 이근택·이근상과 함께 친일매국노 3형제인데, 군부대신 이근택은 을사오적이었다.

#5. 이들의 선정비는 광주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화순군 능주면에는 윤웅렬의 영세불망비가, 아산시에는 윤웅렬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화순군 능주향교에는 이근호 불망비가, 고창읍성 앞에는 이근호 영세불망비가 있다.

이들 비 앞에 단죄비가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 기억은 희망이고 망각은 유랑(流浪)이다. 기억하여야 아픈 역사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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