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올림머리와 이정미의 헤어롤

박근혜의 올림머리와 이정미의 헤어롤

<최혁 남도일보 주필>
 

며칠 간격을 두고 두 여인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둘의 처지는 사뭇 다르다. 한 여인은 자리에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강제로 끌려 내려왔다. 다른 여인은 박수를 받으며 임기를 마쳤다. 지난 10일 파면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야기다. 12일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와 삼성동 사저로 들어갔다. 이 전 재판관도 13일 퇴임식을 갖고 집으로 돌아갔다.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도 ‘측근정치’를 했다. 청와대 전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대통령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고 밝혔다. 또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전했다. 파면선고가 내려진 헌재결과에 대해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헌재결과 불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삼성동 반격’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동 사저로 돌아오는 박 전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해 모여 있던 친박 인사들을 중심으로 해 어떻게든 대선국면에 영향력을 미칠 방안을 강구하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그녀는 또 전체 국민에 대한 사과의 말은 생략했다. 대신 자신을 지지해준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에게 해당되는 ‘국민 여러분께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의 ‘창창한 오기’와 ‘졸렬함’에 대해 개탄하고 있다. 그녀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초등학생들도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고 용서를 빈다. 그의 사고는 극단적인 이분법으로 작동하는 것 같다. 동지가 아니면 적이다. 그는 마지막에 대다수 국민에게 침을 뱉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탄핵반대를 주장했던 이들만 국민으로 여기며 증오의 날을 세웠다.

반면에 이정미 전 헌재재판관은 일약 존경의 대상이 됐다. 사실 이 전 재판관은 헌재의 탄핵인용 여부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기 전까지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에게 이목이 쏠린 것은 헌재선고 당일이었다. 이 전 재판관의 이지적이면서 차분한 표정과 단호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는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결정요지를 읽으면서 ‘그러나’를 4번, ‘그런데’를 3번 사용하며 반전에 반전을 안겼다.

그러나 그녀는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며 단호하게 매듭을 지었다. 그녀의 이 짧은 말은 소름을 끼치게 했다. “이게 나라냐”는 자조를 “그래, 법이 살아있는 나라다. 다시 이 나라를 세우자”라는 희망과 다짐으로 바꾸게 했다.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는 세계인들이 조롱하던 대한민국을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으로 바꾸었다. 무폭력 평화시위로 권력교체를 이룬,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일을 해낸 한국인들을 존경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결정을 내렸던 준엄한 이 전 재판관이 ‘우리의 아줌마’로 변한 것은 선고당일 헌재로 출근하면서 머리를 말았던 ‘헤어롤’ 2개를 미처 빼지 못한 모습이 포착되면서부터다. 얼마나 바쁘고 경황이 없었으면 헤어롤을 그대로 달고 출근 했을까?라는 생각은, 자연 세월호 참사 당일 올림머리를 하느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방문이 늦어졌다는 박 전 대통령의 해명과 오버랩 됐다.

수 백 명의 탑승객이 침몰하는 배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었던 대통령. 국가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선고가 있기에 머리를 제대로 만질 겨를조차 없었던 재판관.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본분을 다하는 모습에서 큰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정미 전 재판관은 아름다워 보인다. 아마도 헤어롤은 한국인의 자존심과 대한민국의 국격을 다시 세운 최고의 상징물일 것이다.

이 전 재판관의 마지막 주문은 나라를 다시 살린 말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헤어롤이 예뻐 보인다. 물론 정의를 회복한 것은 촛불이었다. 그렇지만 그 촛불이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도록 지켜준 것은 헌재의 재판관들이었다. 그 중심에 이정미 전 재판관과 헤어롤이 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헤어롤 2개를 달고 경황없는 모습으로 중대본에 나타났다면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 참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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