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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석 목포과학대 교수의 남도일보 '남도시론'누가 무엇이 일자리를 없앴는가?

누가 무엇이 일자리를 없앴는가?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형광석 목포과학대 교수
 

‘실업자 135만 명, 1997년 12월 외환위기 직후 1999년으로 돌아갔다.’

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요약하면 그렇다. 1999년 8월 실업자는 136만4천 명이었다. 대단한 역주행이다. 누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우리나라에서 실업자가 늘었다 함은 다른 나라가 그 나라의 실업자를 우리나라로 송출했다는 의미이도 하다. 이른바 ‘실업의 수출’이다. 그 다른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북한? 잘 분간하지 못하겠다.

제4차 산업혁명에 관해 한 마디 말조차 아니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임을 느낀다.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많이 사라진다는 걱정과 더불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테니 크게 걱정하지 아니해도 된다는 조금은 밝은 전망이 공존한다. 제1차, 제2차, 제3차 산업혁명 때에도 그와 같은 비관과 낙관이 뒤섞였지만, 경제는 성장하고 발전해왔다. 그러기에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해서도 낙관하고 싶다. 산업혁명이 어떠하든지 간에 장기적 흐름에서 일자리의 소멸과 창출은 균형을 이룬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일자리를 없애는가? 말을 바꿔보자.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무엇을 먹고 살면서 자기 덩치를 키워왔는가? 아주 단순화하면, 자본주의 발달의 초기에는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상품으로 내기만 하면 다 잘 팔렸다. 상품을 사고자 하는 수요는 자동으로 창출되었다. 그래서 나온 말, ‘공급은 스스로 그 만큼의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 세이(Say, 1767~1832)의 법칙이다. 생산과 공급의 능력이 문제였지 수요는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과장하면, 상품을 사겠다는 구입자가 넘쳐났다.

한 나라의 자본주의 발달 초기에는 세이의 법칙이 맞겠지만, 일정한 단계를 지나면 수요부족에 직면하게 된다. 어린아이에게 신체가 발달하면 옷을 큰 옷으로 바꿔 입혀야 하듯이 공급능력에 비해 수요가 무한하게 보였던 시장이 한계에 도달하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은 상품을 사줄 만한 곳이다.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선진 자본주의 국가는 시장을 찾아 식민지를 개척했다. 식민지는 상품시장으로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먹잇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대립의 냉전체제가 작동했으나 전후복구과정에서 서구 자본주의는 황금기를 누렸고, 1980년대 후반에 동유럽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시장경제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광범한 의미의 상품시장은 크게 확대되었다. 싫든 좋든, 신자유주의 기조에 따라 자본주의는 고도로 발전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과 무관했던 변방을 시장경제 영역으로 전환하고 길들이면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 역시 그랬다.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경제영토를 확장했다. 냉전체제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중국과 러시아도 우리나라의 시장이 되었다. 더 나아가 북한도 우리의 교역 상대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의 경제 영토는 확장되어왔다. 그때는 적어도 개별 경제주체는 절망하지는 않았다.

어찌하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파면에 이른 기간에 우리의 시장은 축소되어 왔다. 경제 관점에서만 보면,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폐쇄 등으로 북한 시장을 잃었고, 이제는 중국의 한국관광억제에 따라 중국시장마저 잃게 되었다. 이렇게 시장이 축소되는 데 어떻게 일자리가 창출되고 유지되겠는가? 이처럼 경제주체의 행동반경이 줄어든 환경에서 백방으로 마른 수건을 짜듯 일자리 창출의 수를 내더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거칠지만, 일자리를 앗아간 것은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실패가 아니냐는 문제의식이 가능하겠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올해 5월 9일 대선에 나가는 지도자들이 그분의 대북 햇볕정책, 미·일·중·러 4대국 정책을 되새김해보면, 일자리에 대한 해답이 있을 거다. 당시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김대중 전 대통령님을 형님이라고 불렀다는 전설도 기억난다.
 

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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