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선택, 대통령의 선택

국민의 선택, 대통령의 선택

<문정현 법무법인 바른길 대표 변호사>
 

‘왕이 없는 나라가 나라일 수 있겠느냐 ?’라며 수천년 동안 인류는 ‘왕이 없는 나라’를 상상하지도 않았고,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국민의 당연한 도리로 여겨져 왔다. 국민에게는 국왕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고, 오로지 국왕에게 충성할 의무만이 영예로운 것이었다. 세계 최초로 대통령을 선거로 선출한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의 동쪽에 모여 살던 영국 이민자의 후예들도 대영제국의 신민임을 부인하지 않았고,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벌일 때도 영국군의 일원으로 용감히 싸웠으며, ‘보스턴 차 사건(1773년)’이 일어날 때에도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던 ‘패트릭 헨리’조차도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심을 숨기지 않을 정도였으니, 미국이 영국에서 분리 독립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3세가 식민지인들의 요구와 탄원을 무시하고 부당한 과세를 하고 무력으로 통치하려고 하자 미국 독립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고,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국민의 동의로부터 나온다’는 독립선언문에 기초하여 1789년 1월 7일 최초로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고,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탄생하였다. 비로소 국민이 국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7월 20일 제헌국회의원들이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선출하였고, 1952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도입하였다. 그 이후 수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와 왜곡된 민의의 표출을 지켜보면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였으나, 어쨌든 우리나라는 괄목할 만한 민주주의의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로 인하여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하는 현실에 만감이 교차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선출한 우리 국민의 선택이 너무도 잘못되었음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것이니 부끄러운 마음이고, 국민의 선택이 언제나 최선일 수는 없다는 현실에 무력감마저 느껴진다.

이제 몇 일 후면 우리 국민은 새로운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한 우리의 선택은 철저히 실패한 선택이었으니, 이번 만큼은 후회하지 않을 최선의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고 국민주권주의의 뿌리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촛불을 들었는지, 우리를 분노하게 한 부조리와 부패가 무엇이었는지, 그래서 우리가 기어코 청산하고 싶고 개혁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는 나라가 어떤 나라였는지에 대하여 처음 그 마음으로 돌아가 숙고해야 한다.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는 절실함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국민의 현명한 선택보다 결국은 대통령의 선택과 결단이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민은 대통령을 선택할 뿐 결국 구체적인 정책의 구현은 대통령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택에 앞서 대통령의 선택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이 선택한 여러 정책과 비전을 공약이라는 이름으로 국민 앞에 공개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한다. 따라서 국민은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가 선택한 여러 정책에 귀기울여야 하고, 그 실현가능성을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통령의 선택은 신기루에 불과하거나 사기극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동안 우리의 아픈 경험을 통해 뼈아프게 체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대통령 후보의 급조된 선택만을 뒤쫓지 말고 대통령 후보의 삶이 투영된 과거 행적과 인품, 그의 능력과 결단의 공과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국민의 선택이 대통령의 급조된 선택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뜻한 봄날이다. 내일은 풀빛이 더 짙어지고, 초록이 더 진해질 것이다. 우리의 선택이 억누를 수 없는 설레임으로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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