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박상신 소설가>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야에서라는 이육사의 시다. 육사는 일제 강점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저항했던 독립 운동가이자 저항시인이다. 비록 해방을 맞이하기 1년 전, 북경 어느 감옥에서 불귀의 객이 된 비운의 시인이지만, 오늘날까지 그의 시(詩)와 정신은 민족정기(民族正氣)가 된 채 국민들 가슴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가 순국한 지 74년이 흘렀다. 그리고 2017년 5월 10일, 대한민국은 역사적 순간을 맞이했다. 국회의사당에선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취임식이 조촐하게 치러졌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 순간 문득, 이젠 고인이 된 김대중, 노무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서슬 퍼런 총칼로 국민을 억압했던 군사독재정권의 종언을 고하며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고, 공화국의 민주주의의 초석(礎石)을 다진 고(故) 김대중 대통령,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고 동서로 나뉜 정치 지역구도의 청산을 외치며 낡은 정치와 맞섰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젊은 날 인권변호사로 헌신,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로 걷다, 어느새 홀로서기를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에 오른 문재인, 이 세 사람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시는 이육사의 광야에서다. 그들에게 이육사의 시(詩)는 무엇이고 어떤 의미일까. 반문해 본다.

“천고의 뒤에 백마를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 시대, 마지막 구절 속 초인은 누구이며, 광야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36년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을 맞이하고도, 민족의 운명은 강대국들의 힘과 진영논리에 남북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에도 민족은 6·25를 비롯해 엄청난 시련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최근, 국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시인의 광야(曠野)인, 광화문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민족의 정령들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오로지 민족의 안위를 걱정했다. 시인이 말한 미래를 예견하듯 민초들이 울부짖는 광야로 초인(超人)을 인도했고, 그들의 미래와 운명을 짊어지게 했다. 마치 600여 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대왕 세종이 집현전의 현자들로 하여금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던 지혜와 혜안의 눈을 가진 것처럼…. 풍전등화 속, 한민족의 운명을 구하듯 외세를 향해 선한 지혜와 예지(叡智)를 가르쳤던 선조들의 정령이 되살아나선 살아 움직임을….

1997년 IMF 시절 국가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과 그 주변 참모인 현자(賢者)들은 국민과 함께 모든 지혜를 모았다. 그리고 결국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슬기롭게 극복,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민족 공영이란 대원칙, 햇볕정책을 통해 상생의 결과물인 6·15공동선언이라는 역사를 써내려갔다.

노무현 정부는 어떠한가! 낡은 지역구도 정치를 혁파하고 지방 분권을 통한 국토의 균형발전, 신행정수도 특별법을 만들어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누그러뜨렸다. 더 나가 권위적 정치문화를 극복,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킴으로써 남북한 화해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리고 2007년에는 군사 붕괴 선을 도보로 걷는 최초의 대통령이자, 민족이 나갈 방향을 제시한 영도자였다. 그들에게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발견된다. 소통하는 법, 헌법전문 속 인간 존엄이 몸속에 배어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 전, 약식 취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에게 남긴 여러 어록이 기억난다. 하지만 그의 취임사 중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 그의 얘기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문재인 정부에게 바란다. 적폐를 청산하라. 그리고 진정한 미래로 나가라. 진정한 과거의 청산이 없는, 국민통합은 사상누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반칙과 특권이 사라진 상식이 지배하는 세상, 국민과 소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후대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위대한 주춧돌 정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는 시대정신이자, 역사적 소명이며 김대중·노무현이 꿈꾼 세상, 더 나가 민족이 염원하는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시인은 운명처럼 까마득한 날부터 인내를 써내려갔고, 천고(千古)의 뒤를 기다렸을지 모른다. 이젠 국민들이 목놓아 불러야만 했던 슬픈 광야가 아니길…, 우리들 마음 속, 광야(曠野)이길….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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