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황희, 그리고 문재인과 이낙연

세종과 황희, 그리고 문재인과 이낙연

<최혁 남도일보 주필>
 

지난 2007년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취임직전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부 장관에 임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왜냐하면 힐러리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자리를 놓고 오바마와 치열하게 다퉜던 경쟁자였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국익과 민주당의 화합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이 인사는 성공했다. 힐러리는 오바마와 함께 미국의 대외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선거과정에서 깊어진 당내 갈등은 봉합됐다.

링컨 역시 마찬가지다. 1861년 11월 당선 통보를 받은 링컨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자신을 비아냥대며 모질게 괴롭혔던 슈어드와 체이스, 베이츠 등을 내각명단 후보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상대 당인 민주당 출신 몽고메리 블레어도 명단에 넣었다. 링컨은 슈어드를 국무장관에 임명하면 노예·관세 문제로 크게 둘로 나눠진 국민들을 설득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슈어드는 그런 링컨과 미국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자신의 정적을 중용한 것은 우리 역사에도 종종 있어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세종이다. 세종은 자신의 세자책봉에 한사코 반대하던 황희를 중용했다. 황희는 원래 고려에서 관직에 오른 인물이었다. 나이 서른에 고려가 망하자 고려의 신하 70여명과 두문동으로 들어가 풀뿌리를 먹으며 은둔했다. 이에 이성계는 협박도 하고 한편으로는 달래기도 해 이들을 결국 불러냈다. 고려신하 70여 명 중 가장 나이어린 이가 황희였다.

태종은 황희를 총애했다. 중요한 나라 일을 황희와 상의해 결정했다. 1418년 태종은 세자인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뒤에 세종)을 세자로 책봉하려 했다. 이때 황희는 이를 한사코 반대했다. 이는 태종을 분노케 했고 결국 황희는 파주로 유배됐다. 뒤에 왕에 오른 세종은 황희를 불러들였다. 황희의 나이 60살 때였다. 황희는 그 뒤 18년 동안 영의정 자리에 있었다. 능력 있는 신하를 포용한 세종과 강직한 황희는 조선을 강성케 했다.

세종의 포용력은 아버지 태종에게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태종은 대신들이 중심이 돼 나라를 이끌어야한다(臣權中心)며 개혁정치를 펼치던 정도전을 죽였다. 그러나 태종은 정도전의 자식을 죽이지 않고 관직에 앉혔다. 또 정몽주를 복권해 영의정에 추증했다. 조선왕조에 비협조적인 고려의 사대부들을 끌어안기 위한 조치였다. 태종은 그렇게 해서 능력 있는 신하들을 모았다. 왕권강화라는 측면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위해 사(私)를 버린 것이다.

조선이 초기에 강성한 것은 왕들이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가면서 구원(舊怨)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신하를 중용했기 때문이다. 태종이 권근 등 신하들에게 지시해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일명 강리도)는 부국조선을 향한 조선 왕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세계지도다. 태종은 중국과 견줄 만한, 강성한 조선을 꿈꿨다. 태종의 기개가 담겨져 있는 것이 강리도다. 그러나 조선은 세종이후 이런 ‘통 큰 인재중용’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런데 태종과 세종 때의 신하발탁과 중용을 떠올리게 하는 인사가 문재인 정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제19대 취임선서식을 마친 뒤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국무총리와 국가정보원장 내정자, 청와대 수석 일부 인사를 직접 발표했다. 국무총리 지명자는 이낙연 전남지사였다. 이 총리지명자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정부 출범 때부터 호의를 가지고 이 총리지명자를 지켜봐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에 이어진 청와대인사는 파격의 연속이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인사수석에 여성인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임명했다. 총무비서관으로는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을 발탁했다. 혁신을 위한 인사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여기다 문 대통령의 거리낌 없는 ‘소통행보’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커피 한잔씩을 들고 산책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신선함을 느끼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낙연 총리지명은 참으로 대단한 한 수다. 이 총리지명자는 언뜻 보기에는 절제된 언행 탓에 다소 냉정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던지는 한마디의 말에는 해학과 풍자가 넘쳐흐른다. 근본이 낙천적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경력은 금수저다. 4선의 국회의원에 전남도지사 경력을 지녔다. 소통의 영역이 그만큼 넓고 크다. 그렇지만 생활은 흙수저다. 세종과 황희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명콤비가 돼 이 나라를 강성하고 부강하게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