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사회실현과 진리탐구가 삶의 전부이기를

사랑의 사회실현과 진리탐구가 삶의 전부이기를

<형광석 목포과학대학교 교수>
 

1981년 5월 27일! 내겐 오늘 저녁부터 내일 새벽까지는 그날 돌아가신 여러분을 경건히 추모하는 시간이다.

필자가 용봉골에서 수학을 전공하다가 3학년 겨울 방학 무렵에 경제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고교 동창인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친구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이었다. 겨우 한계효용 개념이나 이해할 정도로 경제학 기초가 갖춰지지 않은 필자에게 친구는 공부하는 요령을 알려줬다. 금남로 가톨릭센터(현재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뒤에 위치한 친구 집에서 한나절 가량 공부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은 깨지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5월 27일 신군부 계엄군의 공격작전으로 5·18광주는 무참히 짓밟혔다. 주지하듯이, 참극 그 자체로 국내보다는 국제사회에 더 잘 알려졌다.

트라우마 증상이었던지, 그 이후 어깨는 쇠뭉치에 짓눌리는 듯했고 마음도 늘 옥죄었다.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거의 독학하다시피 공부하다 보니 정서장애(emotional disorder)까지 겪었다.

5·18광주가 짓밟힌 지 1주년인 그해 5월 27일 친구는 천국 유학을 떠났다.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낙화>-조지훈).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다.”(<꽃 지는 저녁>-정호승).

친구의 최후에 관한 목격자의 증언이다(광주MBC, 2016.5.18). 1981년 5월 27일, 1년 전 광주에서 벌어졌던 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전남 도청에서 숨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학생 수백 명이 서울대 도서관 광장에 모였다. 학생과 경찰이 쫓고 쫓기는 상황이 계속되던 그때, 서울대 도서관 4층에서 외침이 3번 들렸다. ‘전두환 물러나라’, ‘전두환 물러나라’, ‘전두환 물러나라’

그 친구를 기억하고 기려온 움직임이 상당하다. 서울대 민주열사 추모사업위원회는 <산 자여 따르라>(1984.12)에서 친구의 삶과 죽음, 좌우명, 추모글 등을 다뤘다. 고교와 대학교 친구인 이홍철 변호사는 “(열사는) 좌우명에 적힌 그대로 살았다”라며 “그는 말과 행동과 삶이 일치했다”라고 말했다(서울대 저널, 2016.9.17).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고(故) 문익환 목사님은 민주주의 제단에 몸 바친 열사 26명의 이름을 절규했다. “전태일 열사여! 김상진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김태훈 열사여! …광주 2천여 영령이여! …이한열 열사여!”

문재인 대통령님은 올해 제37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젊은 열사 4명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스물두 살, 김태훈 열사! 고 문익환 목사님이 네 번째로 부르짖은 인물이다. 열사는 용인 천주교 묘지에 안장됐다가 망월동 5·18묘역을 거쳐 지금은 국립 5·18 민주묘지 4묘역 16번에서 5·18광주의 증언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간은 떠나가도, 묘비 옆에 놓인 열사의 사진은 여전히 20대 모습이다. “추모 대통령 문재인” 리본이 달린 국화 한 송이는 순백 그 자체이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목숨을 거둔 19명의 서울대생을 추모하는 ‘민주화의 길’이 서울대에 11월 17일 조성됐다(서울대 뉴스, 2009.11.18). 그 길에 <민주열사 고(故) 김태훈 추모비>가 자리 잡았다. “1981년 5월 27일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때 / 광주민중항쟁 1주년 맞이 / 교내 민주화 시위 중 /학살정권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며/ 도서관 4층에서 투신 운명”

<서울대학교 60년사>(2006)는 말한다.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며 투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김태훈의 투신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광주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열사가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책상 앞에 적어놓은 좌우명이 새겨진 묘비를 읽는다. “사랑의 사회실현과 / 진리탐구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 / 이것이 바로 내 삶의 전부이기를”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