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함께 하고 싶다. 코스모스를 심어달라…”

26년 만에 이뤄지는 故 박승희 열사의 유언

내달 3일 전남대 교정서 ‘승희 꽃밭’ 행사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 외치며 분신

1991년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전남대생 故 박승희 열사의 “학우들이 잘 다니는 곳에 코스모스를 심어달라”는 유언이 26년 만에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은 내달 3일 박승희 열사의 유언에 따라 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될 전남대 정문 느티나무 인근 모습. /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내 서랍에 코스모스 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주라. 항상 함께 하고 싶다”

1991년 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전남대학교 교정에서 분신한 박승희 열사는 이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죽어서도 전남대 학우들과 함께 하겠다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 26년이 지나서야 이뤄질 전망이다.

29일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에 따르면 내달 3일 오전 10시 전남대학교 정문 느티나무 옆에서 사업회 회원과 전남대 총학생회, 재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승희꽃밭’ 가꾸기 행사가 열린다.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와 전남대 총학생회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박승희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
생전 박승희 열사의 모습.
기 위해 마련한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꽃밭을 갈고 코스모스 씨를 뿌린 뒤 물을 주는 등 손수 박 열사의 마지막 유언을 실현시킬 예정이다.

6여년 전부터 기념사업회와 총학생회는 전남대 도서관별관(백도) 옆 잔디밭에 코스모스 꽃밭을 만들어 박 열사의 유언을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주간에는 그늘이 지고 야간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등 코스모스가 자랄 수 없는 환경이어서 해마다 꽃이 듬성듬성 피는데 그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남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박승희 열사가 어떤 인물인지, 교내에 열사를 추모하는 꽃밭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업회는 최근 대학 측과 협의해 전남대 7경에 꼽히는 수백년된 느티나무 옆에 ‘승희 꽃밭’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김태현 박승희정신계승사업회 사무차장은 “코스모스가 매년 잘 자라지 못해 열사를 기억하는 학생들과 추모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좋은 자리로 옮기게 돼 비로소 열사의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며 “입지가 좋아 박승희 열사를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도 열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박승희 열사는 전남대 가정대학 2학년생이던 1991년 4월 29일 학생회관 앞에서 백골단 해체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해 투병 21일 만에 숨졌다. 당시 박 열사는 “내 항상 너희와 함께 하리니 힘들고 괴롭더라도 나를 생각하며 힘차게 전진하라. 내 서랍에 코스모스 씨가 있으니 2만 학우가 잘 다니는 곳에 심어주라. 항상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박 열사의 죽음 이후 전국에서 10여명의 학생·노동자가 정권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의문사를 당하는 ‘분신 정국’이 이어졌다. 박 열사는 지난 2006년 민주화유공자로 인정됐다./이은창 기자 le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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