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같은’ 시간이 흐른다

‘금쪽 같은’ 시간이 흐른다

<박상신 소설가>
 

“국민의 집에선 형제를 얕보지 않으며 그를 밟고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 약한 형제를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이런 좋은 집에서는 모든 구성원이 동등하고, 서로 배려하며, 협력 속에서 함께 일한다. 이런 ‘국민의 집’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특권 상류층과 저변 계층의 사회·경제적 격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설문은 1928년 스웨덴 사민당 당수인 페르 알빈 한손(Per Albin Hansson)의 국회 연설문 중 한 구절이다. 우리에겐 ‘국민의 집’이란 연설문으로 널리 회자되기도 한다. 그 연설문의 주된 내용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개혁이 내포돼 있으며 그 문구 하나하나엔 국민의 열망이 담겨 오늘날까지도 스웨덴 국민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연설을 필두로 사민당은 집권(1932년)하며 마침내 4개 항 합의인 노·사·정 협약, 살트시에바덴 협약(1938년)을 체결, 명실공히 완전고용과 보편적 복지의 초석을 이뤄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실천해 온 결과, 오늘날 스웨덴은 지구촌 최고의 복지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이 흘렀다. 인수위 없는 집권 속에도 그간 많은 개혁의 열망이 보인다. 화답이라도 하듯 지지율이 80%를 웃돌며 전 국민이 그의 개혁 의지에 열과 성으로 박수를 보내고 있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 항쟁기념사에서 “이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에서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밥이고, 밥이 민주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소득과 부의 극심한 불평등이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경제민주화’를 국정의 화두로 꺼내 들었다. 이는 요즘 자조 섞인 말로 표현되는 ‘헬조선, N포세대,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 문제, 실업 문제, 노인 문제, 부의 양극화, 신생아 감소’ 등 기타 사회 전반의 문제를 모두 내포하는 말로 대변된다. 실로 무서운 단어로 경제 비민주화, 부의 편중이 가져온 폐단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은 부(富)가 편중되며, 금권(金權)의 시대가 도래된 느낌이다. 어느 작가의 소설 속에선, 돈은 물질도, 사람도, 귀신도, 부리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처럼 편중된 돈, 금권(金權)이 쌓아 올린 거대한 바벨탑은 자본주의의 상징처럼 소수 기득권과 재벌들에게 금권(金權)의 도깨비방망이를 쥐여 주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금권의 방망이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함부로 휘둘렀다. 국민을 계급화, 차별화하며 정경유착을 통해 법과 제도 또한, 그들의 입맛대로 고쳐나갔다.

얼마 전, 30대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00조(재벌닷컴)에 육박한다는 언론 발표가 있었다. 대통령은 국민의 일자리 추경 예산을 염려스러워 동분서주한 모습과는 반대로 재벌의 곳간은 돈이 넘쳐나고도 모자라 뒷짐만 진 채 일언반구도 없이 누구 하나 선듯 나서는 이가 없다. 이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즈음해 낙수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이 쌓아 올린 성채의 벽은 점점 높아만 가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저 씁쓸하기만 할 뿐, 과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 오늘까지, 재벌들만 일궈낸 대한민국의 경제인가. 그동안 국민은 뒷짐만 지고 있었단 말인가. 반문해 볼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들의 금권(金權)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삼권(입법, 사법, 행정)의 밑바탕에 뿌리내리며 그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댄다. 이젠 돈이면 뭐든지 손아귀에 쥘 수 있는 재벌공화국이 된 셈이다. 이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가치를 무색하게 만들고 결국 국가를 파멸로 이르게 하는 지름길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국민이 열망하는 ‘경제 민주화’는 결코 요원(遼遠)한 길이 아니다. 그 해답은 국민이 만든 헌법을 통해 찾아야 한다. 헌법 119조 1항은 ‘자유시장 경제’ 원칙을, 2항은 ‘경제민주화’를 천명하고 있다. 마치 제2항은 부(富)의 편중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둔 조항이다.

학자이자 문재인 정부의 경제참모인 장하성 정책실장은 지금의 한국 사회를 “소득 격차와 실업률이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다”고 진단한 상황이다. 진단이 나왔으면 이제라도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갈한 경제민주화 일성은 89년 전, 스웨덴 당수가 외쳤던 ‘국민의 문’ 연설과 다르지 않음을….

문재인 정부는 물론, 경제사령탑인 정하성, 김상조, 김동연, 그리고 이용섭…,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 곁엔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국민은 소리친다. 경제민주화의 ‘금쪽 같은’ 시간이 흐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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