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사과하는 법

진정으로 사과하는 법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무슨 얘기 못 들었어?”
“무슨?”
“오늘이 우리 애 돌인데, 같이 모여서 식사하자고 했거든. 근데 친구들이 한 명도 안 나타났길래 전화하는 거야. 연락 못 받았어?”
“그래? 미안한데 연락 못 받았어.”
“할 수 없지, 뭐.”

전화는 그렇게 끊겼고 친구는 그날 저녁 대판 부부싸움을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시간과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했는데 초대한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부인은 남편의 치밀하지 못한 성격과 친구들의 무심함을 성토했을 테고 남편은 부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지난 일을 꼬투리 잡아서 반격을 가했을 것이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이는 부부가 싸우는 소리에 놀라서 악을 쓰고 울어 댔을 것이다.

수 십 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 전화를 받고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 그래? 그럼 지금이라도 연락되는 친구들 모아서 갈 테니까 기다려. 돌 반지는 오늘은 못 가져가지만 내일이라도 가지고 간다고 부인께 미리 말씀드려놔. 조금 늦더라도 양해하고.”

서둘러 연락을 해서 몇 사람이라도 갔었다면 아까운 음식이 상해서 버릴 필요도 없고 격한 부부싸움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휴대전화가 없었던 시절이니까 신속한 연락은 불가능했겠지만 술판이 거나해질 무렵 한 명씩 늦게나마 나타나는 친구는 나름대로의 환대를 받고 그 과정에서 좀 더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요즘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하기에 바쁘다. 고심 끝에 내놓은 인물은 이러저러한 흠집이 있고 그 흠집이 장관직을 수행하는데 결격사유가 되는지에 관해 여야간의 공방이 뜨겁다. 위장전입이니, 논문표절이니, 불법 토지 매입이니 연일 불거져 나오는 흠집들은 당사자가 먼 훗날 장관으로 추천될 줄을 알았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자식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당시에는 관행으로 여겨졌던 것이라서, 별탈이 없을 것 같아서 했던 일이고 그런 것들이 지적받을 때마다 당사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그리고 언제나 “죄송하다”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대신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진정한 사과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과는 물질로,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지적을 받고 있는 흠집들은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행한 일이다. 대학입학에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좀 더 쉬운 돈벌이를 위해 자신의 의도로 행해진 일들이다. 당연히 그 일로 인한 이익을 챙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익은 챙기되 책임은 말로 갈무리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실로 죄송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죄송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옳다. 자신의 잘못을 행동으로 보일 길은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죄송은 죄송이라는 말뿐이고 출세는 출세일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 아픈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문제는 그 아픔이 널려 퍼져있다는 사실이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길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치료행위이다. 그리고 치료행위를 통해 아픈 사람은 자신의 통증을 멈추게 해준 사람에게 신뢰를 가진다. 장관이라는 직을 수행하는 일은 자신과 대통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없는 장관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잘못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그 잘못을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는 길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부인에게 미안한 행동을 했다면 미안하다는 말이 아니라 일주일간 저녁설거지를 하거나 한 달간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것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부부간의 진정성이 싹튼다.

수 십 년 전에 “못 가서 미안해”가 아니라 “그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갈게”라는 말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었다면 지금쯤 유쾌한 기억이 하나 더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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