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전라도 농업을 빛낸 선구자>

③ ‘자연휴양림’ 화순의 진재량 독림가

‘자식처럼 나무 키워 황무지를 푸른 숲으로…’

‘육림은 가장 의미 있는 공익사업’신념…山에 일생 바쳐

광주 북구 임야 3만1천834㎡ 아낌없이 사회에 환원하기도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 조성…국민 건강·지역경제 이바지
 

진재량 독림가의 모습.
진재량 독림가가 숲을 방문한 산림경영인협회 회원들과 강연하는 모습.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은 지난해 여름부터 피서객들을 위한 비단폭포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있다.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 제공

최근 기후 온난화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이 심해지면서 숲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또 숲은 지역민들이 손쉽게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 공간도 내준다.

무엇보다 숲은 지상에서 유일한 재생 가능한 자원이고, 그것을 잘 가꿔 현명하게 이용하면 영원히 쓸 수 있는 귀중한 자연자원이 된다.

“육림(育林)은 가장 의미 있는 ‘공익사업’”이란 신념 하나로 산에다 일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 바로 진재량(95) 독림가다.

90세가 넘어서도 그는 매일 같이 광주 동구 산수동 집에서 전남 화순 무등산 편백자연휴양림(옛 안양산 자연휴양림)까지 새벽길을 다녔다.

반평생을 나무에 바친 그는 “무등산 산하가 모두 내 자식같다”며 나무에 대한 애정이 아낌없다. 자식같이 키운 나무를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 40여년 동안 가꿔온 나무와 광주 북구 금곡동 임야 3만1천834㎡(9천630평)를 무등산공유화운동에 선뜻 내놓기도 했다. 그의 삶은 나무와 나라 사랑이 전부였다.

■민둥산서 살려낸 나무들=그는 1923년 전남 장성의 해발 700m 불태산 아래의 산촌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시대에 집안이 무척 어려웠지만 1943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의 길로 나섰다.

그러나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광복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생계가 곤란해 부업으로 시작했던 양계업이 번창해 학교를 떠났다. 병아리 오리 부화업 등 축한업으로 발전해 양돈, 낙농, 한우사육으로 발전했다. 1950년 결성돼 무등산에 축산과 임야관리를 시도했던 ‘전남축산개발단’ 시절에 유심히 살펴봤던 일제 강점기의 편백나무 채종림에서의 큰 깨달음이 조림 인생의 도화선이 됐다. 그는 “당시 무등산은 대부분 키 작은 잡관목이 자라있었지만 꼬막재 너무 북쪽 비탈에 삼나무, 편백 등 큰 나무들이 잘 자라는 것을 보고 ‘헐벗은 산지에 30~40년 정도 좋은 나무들을 잘 가꾸어 나가면 산에서 부국부농의 기원을 만들수 있겠다’는 신념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촌에서 태어나 나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조림은 후손들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신념은 100㏊가 넘는 초지를 조성해 소를 키우는 한편, 산림 보호와 육성활동으로 이어졌다. 당시의 축산인들과 다르게 일정 크기 이상의 수목을 절대 베지 않고 키워 재목감이 될 수 있도록 했고 골짜기 골짜기마다 삼나무, 편백 등을 심어서 가꿨다.

■본격적인 전문 임업인의 삶을 살다=그가 임업에 전념하게 된 것은 환갑에 접어든 1980년 초반 세 아들이 농장 일을 대부분 맡은 뒤다. 그는 “처음부터 임업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축산을 시작하면서 산림을 이용하게 됐고, 이를 계기를 임업을 했다”고 말했다. 육림산업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쏟았던 그는 차츰 임업 사업경영으로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600여 정보의 임야와 목장을 관리하면서 400㏊에 달하는 산림산업을 계속하며 조림과 육림, 산불진화 등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의 운반에 필요한 임도를 매년 지속적으로 개설해 효과적인 산지관리를 도모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세계 임업연수를 다니면서 율림사업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고 산림관리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사명감을 키우기도 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4년 새마을 소득증대사업에 따른 대통령 표창 수상, 2008년 대한민국 녹색대상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1983년에 자영돌림가, 1988년에는 우림독림가로, 그리고 1992년에는 모범독림가로 선정됐다.

■독림가 세 아들과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 경영에 매진=지역민들에게 심신안정과 건강증진에 효과가 있는 산림을 찾게 하고 싶었던 그는 마침 전국적으로 자연휴양림이 조성되던 분위기에 맞춰 2000년대 들어 산림관리 방향을 바꿨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고자 독림가가 된 세 아들과 함께 전통적인 임업경영에서 새로운 형태의 임업경영으로 전환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휴양림사업은 경제, 사회, 환경적인 다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임업 형태라 믿었다. 그는 반평생의 노력으로 키워낸 30여 정보의 삼나무와 편백나무 수림에 휴양시설을 갖춰 사람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게 바꿨다.

지난 92년부터 6년 동안 안양산과 무등산 일대 72㏊ 규모로 조성한 자연휴양림은 야영장·전망대·삼림욕장·자연관찰원·물놀이장까지 갖춰져 매년 4만명 이상 찾는 휴양지가 됐다.

그는 자연휴양림을 경영하면서 자식들이 독림가 및 임업후계자로 대(代)를 이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무등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무등산편백자연휴양림(전남 화순군 이서면 안양산로 685)은 강원도 못지않게 시원하고 여름을 잘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붉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적벽’과 함께 화순군이 이색 피서지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20만평의 넓은 대자연속에서 사시사철 온화하고 싱그러운 무등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인공림과 천연림인 소나무와 참나무 숲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울창한 산림속에 산림욕장, 숲속의집, 강당 및 운동장, 야외 물 놀이터, 구내식당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단체 연수 및 친목회, 야유회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전천후 휴양지이다

휴양림은 화순읍에서 만연 폭포가 있는 큰재 고개를 넘어 10여분 차로 달리면 만날 수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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