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집 한 번 차려볼까?

국수집 한 번 차려볼까?

<문상화 광주대학교 외국어학부 교수>
 

나는 요리를 한다. 내가 제일 잘하는 요리는 중국식 비빔국수나 해쉬 브라운(hash browns) 같은 것이다. 중국식 비빔국수는 뭔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감자를 볶아서 고추장과 함께 국수위에 올리면 되는 것이고, 해쉬 브라운도 뭔가 굉장해 보이는 요리 같지만 실은 서양식 감자볶음에 불과하다. 그냥 감자를 채로 썰어 프라이팬에 익혀내는 감자볶음을 멋있게 부르는 것이다. 아내는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날에 남편이 해주는 이런 음식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또 국수를 맛있게 삶아내는 내공을 전수받아 준비한 비빔국수가 입에 안 맞을 이유도 없다. 내가 국수로 저녁을 만들어 내면 아내는 언제나 똑같은 칭찬을 한다.

“당신, 국수 정말 잘 삶아. 은퇴하고 국수장사하면 돈 많이 벌 것 같애.”

국수 잘 삶는다는 아내의 칭찬에 은퇴 후의 국수장사를 심각하게 고려한다. 목이 좋은 곳에 자그마한 가게를 하나 차려서 장사를 하면 어떨까? 소소한 이익을 내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선심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삼십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가 칭찬을 하는 국수 삶는 솜씨면 많이는 못 벌어도 소소하게는 벌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갑자기 중요한 발견을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아이들은 서울에 산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후에 처음에는 빈집증후군을 겪던 아내도 이제는 안정이 된 것 같고 아이들도 자신들의 삶에 적응해가는 눈치다. 문제는 가끔씩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머물러야 하는 경우에 생긴다. 공간이 작다보니 조금만 어질러도 집안에 발 디딜 틈이 없고, 우리에게 눈치가 보이는지 아이들은 수시로 청소며 정리를 한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녀석들은 부랴부랴 화장실 천정이며 바닥이며 변기 주변까지 나름 깨끗하게 청소한다.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음식들을 처리하고, 밀린 빨래에, 거실(거실이라고 부를 수 있으면) 청소까지 마치고 사열 받는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하지만 살림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전업주부의 기대치를 맞출 수 있겠는가? 아내는 아이들이 해 놓은 화장실 청소를 다시 하고, 냉장고 정리를 다시 하고, 싱크대며, 건조대며 주방 일체를 다시 손본다.

“엄마, 그만 좀 해!”

막내가 짜증을 내지만 아내는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살림꾼 아내의 눈에 아이들의 집은 온통 어질러 놓은 잡동사니 같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국수를 잘 삶는다는 칭찬을 믿고 국수집을 차린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가족 서 너 명의 입맛에 맞는 국수를 삶아 낼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고객들의 입맛을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정된 고객을 상대로 동종업체와 경쟁을 해야 한다면 나 같은 아마추어가 어떻게 프로를 이길 수 있겠는가? 저녁마다 한숨을 쉬면서 자신의 가벼운 결정을 질책할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자신들이 깨끗이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을 한다 할지라도 삼십년을 훌쩍 넘긴 아내의 살림솜씨를 이길 수는 없다. 잔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하고, 아내의 손이 가면 집안이 정돈되고 살림에 윤이 흐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아마추어보다는 프로가 나은 법이다.

이 당연한 이치가 유독 정치권에서만은 적용되지 않는다. 전문가가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섬세한 대안을 제시하는 한 후에 정책담당자가 최종결정을 해야 하지만,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굵직굵직한 문제는 그 절차가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해가 상충하고 갈등이 상존하는 우리사회에서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해법을 내놓기 전에 적어도 객관적이고 치밀한 분석을 통한 상황파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정치적 바람에 무관한 전문가들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전문가들은 주변에 의외로 많다. 그들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거나, 볼 수 있는 안목이 없을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는 오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삼고초려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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