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아직도 국민은 레밍인가?

탄핵 이후, 아직도 국민은 레밍인가?

<문정현 법무법인 바른길 대표 변호사>
 

지난 겨울, 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가의 주인이자 권력의 주체가 국민임을 선언하였다. 그 결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성과를 거둔 촛불혁명은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우리 나라의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적폐를 청산하고 상식과 정의가 살아있는 정상적인 국가와 사회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촛불혁명에 저항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없지 않았고, 탄핵 이후 지금까지도 여전히 촛불혁명을 향하여, 탄핵결정을 향하여 삿대질하고 있는 무리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대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소수의 의견과 반론이 존중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수보호의 대명제는 상식과 정의의 관념에 반하는 것까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나 인권과 민주, 정의를 짓밟는 생각과 행동까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몇일 전 어느 도의원이 우리 국민은 레밍과 같다고 하였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 그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도의원으로 당선되었을 것이고, 도민의,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약속하였을 것임이 분명한 정치인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닌 정치인이 그와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하니 그의 정치철학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레밍은 쥐과에 속하는 동물로 몇 년마다 크게 증식하여 이동하므로 ‘나그네쥐’라고도 하는데, 레밍은 주로 야행성이고 집단을 이루어 직선적으로 이동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생소한 이 쥐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80년 4월 소위 ‘서울의 봄’ 무렵,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인 존 위컴이 ‘한국민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고 말하면서 부터인데, 그 당시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에게 많은 사람들이 줄서는 현상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는 한국민이 집단적으로 정의나 상식의 잣대가 아닌 권력자에 편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하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한국민은 상식이나 정의의 관념이 아닌, 권력자에 대한 집단적 추종에 그치는 비루한 인간이라는 것이어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비유이다. 쿠테타로 권력을 잡은 권력자에 빌붙어 권세를 누리던 일부 비정상적 무리에게나 어울리는 것일지 몰라도 우리 국민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탄핵 이후, 국민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였다.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국민의 지지율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국민의 선택에 따라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그와 같이 선출된 새로운 지도자가 촛불민심을 받들어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을 레밍과 같다고 하다니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아마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촛불민심과 탄핵혁명은 비정상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의 새로운 정부에 협력하고 박수를 보내는 대부분의 국민을 레밍과 같다고 비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그들의 의식속에는 정의와 상식을 부정하는, 국민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민주의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악마의 심성이 자리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민심을 외면하는 정치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상식과 정의를 짓밟는 정치가 어떻게 생존할 수 있겠는가?

폭염과 가뭄으로, 폭우로 힘든 여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시원한 빗줄기를 선물하는, 서로에게 우산이 되어 주는 존재로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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