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박상신 소설가>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 없고 소외된 사람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검사로서 처음부터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

이 글귀는 전국 2천여 명의 검사들이 임관식 때 선서하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검사 선서문(대통령령 제21344호)’의 내용이다. 그들의 검사선서문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와 그 결을 같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선서문 문구 하나하나엔 국민의 고혈(膏血)과 인권, 헌법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핏빛으로 이뤄낸 민주(民主)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느낌마저 든다. 이는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정의롭고 바르게 사용해 달라는 지상명령이며 충성서약서로 들린다. 하지만 요즘 들어, 쏟아지는 장대비처럼 ‘검사선서문’이 씁쓸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순간에도 선서문의 숭고한 뜻을 받든 일선 검사들은 그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 묵묵히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며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낯 뜨거운 시선과 마주할 때면 그들의 어깨는 무거운 돌덩어리를 짊어진 고뇌의 베르테르처럼 깊은 수렁에 빠진 채 자괴감마저 든다.

이젠 일부 비위 검찰의 낯 뜨거운 불법행위는 썩어 문드러져 구역질이 날 정도다.

검사장 출신의 ‘전관예우’를 거들먹거리며 불법 거액수임료를 챙기고도 탈세는 물론, 그 부를 통해 가족 명의 123채의 오피스텔을 소유한 홍만표, 검사장의 지위를 이용해 100억 원대 주식시세차익을 통해 뇌물성 대가를 챙긴 진경준, 친구로부터 수사청탁의 대가로 온갖 불법 향응을 제공받은 스폰서 검사 김형준, ‘돈 봉투 만찬’을 천연덕스럽게 자행하고도 관행이라 치부해버린 우병우 사단의 정치검사들…. 부도덕의 극치이며 그들의 작태는 양아치 짓거리로 패악을 서슴지 않은 일상의 깡패들과 뭐가 다른 것인가. 단지 법을 이용, 허가받은 깡패들이란 느낌마저 든다. 그들이 저지른 비리와 불법이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날 때 임관식에서 외친 검사선서문 속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국민을 섬기는”이란 소명은 화장실 버려진 휴짓조각처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검사의 지위를 이용하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운 관료이자, 허가받은 깡패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검찰은 그간 방대한 수사권과 기소독점권, 그리고 영장청구권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조직이었다. 그도 모자라, 역대 정권에서 권력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처럼 청와대, 법무부,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요직을 두루 독식하고 끝없는 권력의 독배를 들이킨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그들이 맹세한 ‘검사선서문’ 속 초심은 온데간데 없는 공염불이 된 채 그 칼끝은 검찰개혁이란 엄청난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이는 인과관계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이제라도 검찰은 임관식 때 선의의 눈망울로 검사선서문을 외쳤던 초심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얼마 전, 문무일 검찰총장을 임명한 문 대통령은 철저한 검찰개혁을 당부했다. 그는 “정치검찰이 있었다면 통렬히 반성하고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하며 검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제3의 논의기구 등 지혜를 모아 달라”라는 주문도 서슴지 않았다. 아울러 공수처(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설치의 확고한 추진 의지도 다시 한번 재천명했다.

지난날 역대 정권에 빌붙어 호가호위한 정치검사들, 그리고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검사 신분을 이용한 일부 검사들, 그들의 슬픈 자화상이야말로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수치이며 폐단이란 것을 검찰조직은 잘 알고 있으리라. 이제야말로 처절한 자기반성과 성찰로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다.

하여, 이제라도 검찰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자기반성을 통해 과거를 청산해야 하며 스스로의 권력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검사선서문의 초심을 잃지 않는 “오로지 진실만 따라가는, 국민만 섬기는” 검찰조직으로 거듭나길 국민은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문득 연 초 국회 청문회에 나온 일선검사의 추상(秋霜) 같이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얘기한 그의 일성(一聲)이 메아리처럼 귓가에 맴도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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