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취재>우체국 집배원의 고달픈 하루

하루 1천500통 배달…식사시간 고작10분 남짓

주당 법정근로 52시간이지만

명절엔 85시간까지 치솟아

살인적 근무에 동료 잃은 슬픔

매일 교대로 ‘1인 시위’ 나서
 

폭염이 기승을 부린 2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서 만난 광주광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웅(56)씨는 더운 여름과 눈 오는 겨울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명절 전후와 선거 기간이라고 밝혔다. /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우편물을 싣고 배달을 시작합니다. 보통 하루에 1천500통의 우편물을 돌리고 바쁠때는 3천통 넘게 배달해야 해요”

2일 오전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에서 만난 광주광산우체국 소속 집배원 고웅(56)씨는 빨간 우체국 오토바이 앞 뒤로 우편물을 가득 싣고 있었다. 20년차 베테랑 집배원인 고씨는 매일 1천여통의 우편물 외에 150여개의 소포와 등기도 배달한다. 아침 일찍 배달에 나서도 해가 떨어질 때까지 돌아다녀야 소화할 수 있는 양이다. 그래도 고씨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편(?)이다. 평동산단과 본덕동 등 비교적 넓은 지역을 다니다 보니 이동시간이 오래 걸려, 도심 지역 배달에 나서는 집배원들보다 하루 우편물 배달량이 500통 정도 적다.

고씨는 이날도 본덕동 주택가와 골목길을 종횡무진 누볐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건물을 수차례 오르내리는가 하면, 시골길 골목 골목을 찾아다니며 우편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어르신들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연일 35도 안팎의 무더위가 이어지면서 이날 고씨의 얼굴과 머리에서는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그는 더운 여름과 눈 오는 겨울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명절 전후와 선거 기간이라고 밝혔다. 명절 2주 전부터 우체국은 전국에서 몰려온 농산물과 선물 등으로 폭발 지경에 이른다. 선거 기간도 가가호호 선거홍보물 배달로 집배원들에게는 눈코 뜰새 없는 나날이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주당 52시간 근무가 85시간으로 늘어나고, 당연히 주말도 없다.

집배원들에게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 없는 집’이다. 직접 전달해야 하는 등기를 들고 수백개의 계단을 올랐는데 수신자가 없을 경우 다음날 다시 이곳을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도 길어야 30분이다. 오후 배달이 밀려 편하게 먹을 시간도 없다. 집배원들은 대개 10~20분 안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배달에 나선다.

비인간적인 집배원들의 고된 노동은 우정본부의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에 기인한다.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은 집배원의 업무를 190여개 단위로 나눈 뒤 각 업무별 평균 소요시간을 0.1초 단위로 측정해 집배원 1인당 적정 배달 물량을 산출한다. 일반우편 배달 2.1초·등기 28초 등 이다. 우정본부는 이 시스템을 통해 각 우체국별 필요인력을 추산하는 데, 날씨와 도로상황 등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산출시스템 때문에 실제 현장 대비 필요인력은 항상 부족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살인적인 근무환경에 올해만 벌써 12명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다. 5명은 처지를 비관해 자살했고, 2명은 교통사고로 숨졌다. 나머지 5명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 과로사했다.

광주지역 집배원들은 집배원 과로사 특단 대책, 집배원 증원 등을 위해 서광주·북광주·광주·광산 우체국 앞에서 아침 1인 시위를 교대로 진행하고 있다. 우편물 배달에 지장이 없도록 출근 전 오전 6시에 시작하는 외로운 1인 시위도 이날로 22일째를 맞았다.

고씨는 “우체국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권리를 못 찾고 있다. 더이상 우리는 부품이 아니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고 하소연했다.
/임소연 기자 l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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