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전라도 농업을 빛낸 선구자>

⑥ ‘명품 장’ 담양의 기순도 명인

10대째 내려온 종갓집 장맛서 탄생한 ‘진장’

직접 구운 죽염·가문 비법 만남…전통 맛 보급 앞장

40년 넘게 한국 장류식품 명맥 잇고 산업화 길 열어

미래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식품 전파도 열성 다해
 

대한민국 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된 기순도(67) 명인은 전통장류 분야에서 전통식품 보존과 보급에 열정을 쏟고, 전남 콩 산업은 물론 농가 소득증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전남도 제공

국내 1호 슬로시티인 전남 담양군 창평면은 ‘느림의 미학’이란 생존방식으로 살아가는 마을이다. 지난 2007년 담양 창평마을은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면 등과 함께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담양 창평마을은 도시 인근 농촌으로 현대와 전통이 잘 조화를 이루는 대표마을로, 지난 10년간 슬로시티 ‘원년 멤버’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것이다.

‘달팽이 같은 느림’을 추구하는 이 마을엔 ‘슬로 푸드’도 있다.

5년 이상 숙성시킨 간장인 ‘진장(陳醬)’이 바로 그것이다. 맛과 향, 색은 모두 시간의 깊이 만큼 진해진다. 지난 2008년 대한민국 식품명인 35호로 지정된 기순도(67) 명인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360년 된 씨간장을 가지고 전통장류를 담는다.

음식솜씨 좋은 명인들이 분야별로 많은 전라도지만, 기 명인은 전통장류 분야에서 그 만큼 열정적으로 전통식품 보존과 보급에 힘을 쏟고, 전남 콩 산업은 물론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남 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위치한 ㈜고려전통식품 장독대에서는 켜켜이 세월을 머금은 장들이 익어가고 있다.

■1천개의 항아리에 닿는 손길=담양군 창평면 유천리에 위치한 ㈜고려전통식품. 그곳에 가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1천여개의 항아리다. 그 안에는 모두 장이 들어 있는데 각각의 항아리에는 만든 날짜가 표기돼 있다. 이 가운데 기 명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장독대에서는 켜켜이 세월을 머금은 장들이 익어가고 있다. 명인의 칭호를 얻게 해준 진장은 여인의 머릿결처럼 윤기 나는 검은색을 뽐내고 있다.

진장은 토판염을 대나무 속에서 9번이나 구운 죽염 간장으로 기 명인의 기술을 집대성한 간장이라 할 수 있다. 토판염은 갯벌 흙속에서 채취한 천일염으로 갯벌의 다양한 유기화합물과 영양분이 스며들어 있다. 일반 천일염보다 10배 정도 비싸다. 이런 토판염을 수분이 적어 단맛이 가장 강하다는 겨울 대나무에서 9번 정도 굽는다. 구울 때마다 양이 줄어든 소금은 9번 굽고 나면 굽기 전 소금 양의 30% 정도만 남게 된다.

기 명인은 지난 1972년 장흥 고씨 문중에 10대 맏며느리로 시집오면서 장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맏며느리로서 부엌일을 배우며 360여년 동안 고씨 문중에 전해내려 온 전통장 담그는 법을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았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매년 음력 11월말이면 메주를 쑤고 발효시킨 음력 정월에 죽염과 함께 항아리에서 숙성시켜 간장을 만들어 왔다.
 

1천여개의 항아리 중 기 명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은 없다.

■소금 대신 죽염…명품간장 탄생=기 명인이 전통 장에 죽염을 활용하게 된 것은 남편 덕분이었다. 남편 고갑석 씨는 남들에게 베푸는 것을 좋아해 어려운 집에 쌀이나 나물을 퍼주는 것은 예삿일이고 학창 시절에는 남의 납부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형제들이 모두 서울대로 진학할 때 그는 동국대 불교학과로 갈 만큼 불교에 심취했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은 한 스님으로부터 죽염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남편이 죽염을 만들자 기 명인은 된장과 간장에 죽염을 응용했다. 장을 담글 때 사용하는 소금을 죽염으로 바꾼 것이었다. 10대를 내려오는 장맛에 죽염이 더해지니 장맛은 감칠맛을 더해갔다. 기 명인이 남편의 죽염을 살림에 활용하고 있는 사이 남편 고씨는 죽염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씨는 사업을 시작한 지 3년만에 돌연 병을 얻었다.

당시 기 명인이 생계를 꾸려갈 수단은 고씨가 미리 구워둔 죽염밖에 없었다. 기 명인은 아들딸과 힘을 합해 죽염을 팔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 명인의 간장을 맛본 주변인들은 간장 사업을 권유했다. 지난 1999년 남편이 죽염을 만들며 사업체로 등록했던 고려기업을 고려전통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장을 사업화했다. 남도특산물전을 따라 장을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판로 확보에 노력했다. 이러한 경험을 발판 삼아 2002년에는 신세계백화점과 계약을 맺었다. 그의 장은 고가이지만 시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맛과 경쟁력을 얻었다.

손이 많이 가는 전통식품의 특성상 대량생산은 불가능했다. 해마나 백화점 납품 양은 늘었고 2004년에는 미국에 수출까지 했지만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장고 5개로 시작한 사업이 어느새 강소기업이 됐지만 기 명인은 사업 확장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그의 목표는 ‘좋은 장’이지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번 먹은 사람들이 또 찾을 정도가 돼야한다. 전통식품은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다”며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양보다는 질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전통식품에서 판매 중인 기순도전통장 튜브4종세트.

■전통식품 보존의 가치=“장 담그는 과정이 10단계라면 단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매 과정에서 최선을 다해야 좋은 장맛이 난다”

기 명인의 장 담그기 비법인 셈이다. 그는 2008년 농림축산식품부의 식품명인에 도전했고 심사를 통과해 명인이 됐다. 연간 그의 손을 거쳐가는 콩만 해도 800~1천 가마. 1천여개의 장독에 장이 숙성 중이고 연중 소비되는 양만도 500여개, 여기에 원료료 사용하는 콩은 품질 좋기로 유명한 무안지역 농민들이 재배한 콩만 사용하는데 전량 농협과 계약해 사들인다. 그의 사업이 잘되는 만큼 주변 농민들도 소득을 올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다.

최근 기 명인은 전통식품을 잘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전통식품을 알리고, 전통식품 보존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전통식품은 원재료가 중요한데 이 원재료 값이 상당하다. 어렵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명인들은 이마저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며 전통식품을 예 비법 그대로 보존할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 명인은 교육에도 열심이다. 그의 꿈은 자라는 학생들에게 장맛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음식 맛을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는 그는 왜(倭)간장과 우리 간장의 맛 차이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우리 전통 맛을 보고 알 수 있도록 역할을 할고 싶다고 전했다. 그래서 그는 이화여대, 한양대, 전남대 등 여려 대학에서 장 담그기를 시연하고 학생들과 함께 맛보는 시간을 가지며 미래를 만들어갈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식품을 알리는 데도 열성을 다하고 있다./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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