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명 5·18기념재단 이사, 택시운전 중 항쟁 참여

“‘광주의 5월’ 더 이상 왜곡하지 않았으면…”
 

“당시에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당장 눈 앞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맞아 죽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

영화 ‘택시운전사’가 인기를 끌면서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택시기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장훈명 (재)5·18기념재단 이사(64·사진)는 ‘광주의 5월’을 이렇게 회상했다. 당시 평범한 20대 가장으로 택시 운전으로 생업을 하던 장 이사는 1980년 5월 19일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게 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계엄군들이 박달나무로 자체제작한 야구방망이만한 곤봉으로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때리는모습을 목격했는데,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며 “살육에 가까운 계엄군의 만행을 보며 가만히 있다간 광주 시민들이 모조리 떼 죽음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처음에는 계엄군에 쫓기는 학생들을 태워 피신시키는 간단한 일만 했지만, 점점 더 악랄해지는 현장을 목도하며 학생들에게만 맡겨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동료 기사들과 의견을 모았다”며 “당시 동료 기사들은 목숨을 내걸고 학생들과 시민들을 도우려고 애썼다”고 덧붙였다. 장씨는 5·18 민주화운동의 기폭제로 평가받는 ‘택시·버스기사들의 차량시위’를 이끌었던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5월 단체 회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장씨는 “그 동안 5·18을 다룬 영화들이 대부분 피해자 시각에서 전개돼 세대간은 물론 지역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이번 영화가 80년 5월에 대한 진실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목숨을 걸고 싸웠던 광주시민들을 빨갱이 또는 폭동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돈다”며 “다른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최소한 눈 감을 때는 명예로울 수 있도록 더이상 80년 광주를 왜곡하는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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