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의 작곡 배경인 드들강과 작곡가 안성현

드들강에 널리 퍼진 안성현의 ‘엄마야 누나야’

조국 분단 희생자, 민족 음악가 안성현 기리는 합창제 열려

일제지배·상실아픔 표현했지만 ‘월북자’ 덧씌워져 역사뒤안길

‘부용산’등 작곡…나주시민들 그의 고운 노래들 합창하며 추모

2017 나주 안성현합창제에 참가한 마을합창단이 안성현 작곡가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남 나주시문화원 제공
지난 12일 의미 깊은 합창제가 전남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변에서 열렸다. ‘엄마야 누나야’와 ‘부용산’ ‘해당화’ 등을 작곡한 남평 출신 음악가 안성현을 기리기 위한 합창제가 남평 드들강 솔밭유원지에서 열린 것. 이날 합창제에는 나주시립예술단과 나주 마을합창단 9개 팀 200여 명이 참가했으며 400여 명의 관객들이 합창제를 즐겼다.<관련기사 10면 >

8·15 광복절을 맞아 전남 나주문화원이 개최한 합창제에서 시립합창단은 엄마야 누나야, 부용산 등을 공연했다. 시립국악단은 해당화, 부용산등을 연주했다. 마을합창단은 진달래, 들국화, 앞날의 꿈, 내고향 등을 불렀다. 이날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 동안 펼쳐진 합창제를 통해 안성현 선생이 남긴 아름다운 선율이 드들강과 솔밭을 흠뻑 적셨다.

안 선생은 일제강점의 암울함과 남북분단의 아픔을 장중하고 애절한 선율로 표현했다. 1920년 나주시 남평면 동사리 21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가야금 산조 연주자이자 지휘자인 안기옥이었다. 1936년 아버지를 따라 함흥으로 이주했다. 1942년 일본 도호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 전남여고와 광주사범, 조선대학교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목포 항도여중(목포여고의 전신)에서 근무하면서 동료교사 박기동(朴璣東)이 죽은 동생을 기리면서 써놓은 시에 곡을 붙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부용산(芙蓉山)이다. 1948년에 작곡된 부용산은 노래를 잘하던 항도여중 5학년생이던 배금순이라는 학생이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학예회에서 처음 부른 뒤 입에서 입을 통해 남도전역으로 퍼져갔다.

혼란의 시대, 이 부용산 노래는 여순사건 뒤 지리산으로 들어간 빨치산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됐다. 서럽고 장중한 느낌의 노래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빨치산들의 절박한 심정과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안 선생은 1950년 9월 15일 목포에서 열린 안성희의 무용발표회가 끝난 후 안성희의 승용차를 타고 평양으로 향한다. 안성희는 무용가 최승희의 딸이다.

아버지 안기옥을 만나기 위해 안성희의 차를 얻어 타고 간 안성현은 ‘월북자’가 돼버렸다. 이틀 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해 목포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끊겨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안성현과 그의 노래는 불온시 됐다. 아버지를 만나러 간 평양행은 그를 사상이 위험한 월북자로 만들어버렸다. 빨치산들이 즐겨 부른 부용산을 작곡했다는 사실도 그를 기피하게 했다.

안성현은 북한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2006년 4월 25일 평양에서 숨졌다. 이후 최정웅 씨등 남평의 뜻있는 이들이 선생의 음악세계를 기리기 위해 ‘엄마야 누나야 노래연구회’를 발족하고 2009넌에는 안성현노래연구회를 발족시켰다. 나주시와 연구회는 선생의 음악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 제1회 나주문화예술제에서 안성현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이날 안성현 합창제에서 나주시민들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시대의 희생양인, 민족음악가의 비극적인 삶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그의 음악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왔다. 월북자라는 누명 하에 고통의 세월을 보냈던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와 사과의 말을 전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고운 노래들이 울려 퍼진 이날의 남평 드들강은 여름햇살을 받아 더욱 빛났다.
/최혁 기자 kjchoi@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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